살면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저는 한 번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나홍진 감독의 〈호프〉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도 괴물이나 거대한 액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평범했던 마을의 일상이 어느 순간 완전히 뒤집히는 모습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가상의 마을 호포항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공포는 처음부터 거대한 재난보다 '평범한 하루가 갑자기 끝나는 순간'에서 시작됩니다.'호프'라는 제목이 품은 의미, 희망은 무엇인가영화 제목이 왜 〈호프〉일까라는 생각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남았습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곳은 비무장지대의 가상 마을 호포항이고, 제목인 'HOPE'는 영어로 희망을..
솔직히 예상 밖이었습니다. 〈짱구〉를 보기 전까지는 〈바람〉의 추억을 다시 꺼내 보는 후속 이야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마주하고 나니 학창 시절의 학교와 친구들보다 오히려 그 이후의 시간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분명했지만 현실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버티던 청춘의 시간이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짱구 속 꿈과 현실 — 100번이 넘는 오디션이 말해주는 것저도 학창 시절에는 하고 싶은 것만 보였습니다. 잘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고, 열정이 있으면 어떻게든 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회로 나오고 나서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세상은 열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짱구〉의 주인..
솔직히 저는 영화 《걷기왕》을 처음 접했을 때 그냥 가볍게 웃고 넘어갈 코미디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고 나서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멀미 때문에 어디든 걸어 다니는 만복이가, 빠르게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세상에서 자기 속도로 버텨가는 모습이 남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걷기왕》 후기이자, 느리게 사는 제 경험을 영화에 겹쳐 본 감상문입니다. 단순한 킬링타임용이라고 보기엔 아까운 구석이 있는 작품입니다.《걷기왕》 후기: 도피에서 시작한 동기, 그게 왜 더 공감이 됐을까이 영화를 힐링 영화라고 소개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조금 다른 지점에서 먼저 눈이 갔습니다. 만복이가 경보를 시작한 이유가 숭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인 스스로도 공부는 못할 것 같고 운동은 쉬워 보여서 시..
아이가 양말을 엉망으로 신고 있는데 자꾸 손이 먼저 갔습니다. 기다려줄 여유가 있었는데도 제가 먼저 당겨서 신겨주었습니다.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를 보고 나서야 제가 아이에게 해온 사랑의 방식을 처음으로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7명의 악동과 마법사 유모가 등장하는 영화인 줄만 알았는데, 보고 나니 아이들보다 오히려 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내니 맥피: 우리 유모는 마법사 — 말썽 뒤에 숨겨진 아이들의 마음영화 속 일곱 아이들은 17명의 유모를 내쫓은 것으로 그려집니다. 밥상을 엎고, 함정을 만들고,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저 제멋대로인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저만 청소를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빠는 장손이라서, 남동생은 남자아이라서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어린 저에게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지만, 왜 그런지 묻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2009년 영화 〈홍길동의 후예〉를 보다가 그때 마음속으로만 삼켰던 질문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왜 나만 해야 하지?" 영화 속 인물들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부당한 상황에 맞서는 모습을 보면서, 오래전 할아버지 댁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홍길동의 후예를 보며 떠오른 기억 — 장손이라서, 남자라서초등학교 때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 적이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제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소였습니다. 친구들과 놀고 싶기도 했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정..
아는 것을 말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까요, 아니면 결국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침묵일까요. 영화 〈올빼미〉를 보다가 제가 학창 시절에 친구를 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친구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괜히 제가 나섰다가 함께 혼날까 봐, 혹은 일이 더 복잡해질까 봐 입을 다물었습니다. 당시에는 그 선택이 가장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침묵은 예상보다 훨씬 오래, 훨씬 무겁게 마음에 남았습니다.영화 〈올빼미〉 속 궁중 미스터리 — 소현세자는 왜 죽었는가영화 〈올빼미〉는 조선시대 소현세자의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에서 출발해 독창적인 상상력을 더한 궁중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오..
솔직하게 말하면 관계가 좋아진다고들 하지만, 저는 솔직하게 말할 때마다 오히려 더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화 〈정직한 후보〉를 보면서 웃다가도 멈칫했습니다. 거짓말을 못하게 된 국회의원의 이야기가 어쩐지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정직한 후보, 솔직하게 말했는데 왜 더 힘들어졌을까영화 속 주상숙은 갑자기 거짓말을 전혀 할 수 없게 됩니다. 평소라면 속으로만 생각하고 넘어갔을 말까지 그대로 입 밖으로 나오면서 예상하지 못한 상황들이 이어집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충동 등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탈억제(disinhibi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만 영화 속 주상숙의 상황은 어디까지나 코미디를 위한 영화적 설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영화는 이..
2000년에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를 처음 본 건 꽤 오래 전 일인데, 다시 보고 나서도 며칠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았습니다. 남북 병사들이 초코파이를 나눠 먹고 공기놀이를 하던 그 장면들이, 어떤 액션보다 오래 남더라고요. 이 글에서는 영화가 왜 단순한 남북 소재 드라마가 아닌지, 그리고 제가 이 영화를 보며 겹쳐 떠올린 경험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우정이 쌓이는 방식 — 거창한 계기 없이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처음에 이 영화를 이념 갈등을 정면으로 다루는 묵직한 정치 드라마로 예상하고 봤거든요. 그런데 막상 화면을 채우는 건 병사들이 서로 놀리고, 담배를 나눠 피우고, 별것 아닌 농담에 같이 웃는 장면들이었습니다.이 영화에서 남북 병사들의 관계가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다시 볼 때마다 강동원에게 후광이 실제로 있었느냐는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 번 보고 나서 든 생각은, 후광이 있고 없고보다 왜 그렇게 보였는지가 더 흥미롭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논란과 함께,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실제로 연결 지었던 경험까지 함께 정리해봤습니다.검은 사제들 속 후광 논란, 실제로 있었던 걸까개봉 당시 이 논란이 얼마나 크게 퍼졌는지는 저도 기억합니다. 강동원이 향로를 들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분명히 후광이 보였다"는 반응과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일부 관객은 스크린에서 직접 확인했다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후광 효과(Halo Effect)란 원래 심리학 용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반전 스릴러로 보려고 앉았습니다. 강하늘과 김무열이라는 조합이 흥미로웠고, 납치와 미스터리라는 구도가 꽤 당길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제가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던 건 반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머릿속에서 자꾸 떠오른 건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기억의 밤 속 해리성 기억 상실, 영화가 고른 장치의 무게영화 속에서 의사는 진석의 상태를 해리성 기억 상실이라고 설명합니다. 해리성 기억 상실은 개인의 중요한 자전적 기억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이 나타나는 해리 증상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를 극심한 심리적 충격을 겪은 진석이 과거의 기억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모습과 연결해 보여줍니다.진석은 20년 전 자신이 저지른 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