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학교폭력 영화라고 생각하고 앉았다가, 어느 순간 제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당황했습니다. 영화 《내 이름은》은 4월 15일 개봉하는 정지영 감독의 신작으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현지 관객의 눈물을 자아낸 데 이어 제28회 우디네 극동 영화제 메인 경쟁 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름을 바꾸고 싶은 소년 영옥, 그리고 기억을 잃어버린 채 살아온 정순. 두 사람의 이야기는 처음엔 따로 흘러가다가 결국 하나의 질문 앞에서 만납니다. 그 이름 뒤에는 어떤 시간이 있었는가.내 이름은 속 이름 하나에 담긴 정체성의 무게저도 처음엔 단순히 이름 콤플렉스 이야기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속 영옥이 자기 이름을 '이민종'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장면을..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나는 세 아이를 똑같이 사랑했다'고 믿었습니다. 2004년 개봉작 《우리 형》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원빈, 신하균, 이보영 주연의 이 영화는 형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제가 보기엔 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영화 한 편이 제 육아 20년을 되짚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우리 형 속 편애라는 오해 — 부모의 의도와 아이의 감정은 왜 엇갈리는가영화 속 어머니는 선천성 기형을 안고 태어난 큰아들 성현을 더 많이 돌봅니다. 여기서 선천성 기형이란, 태아가 태어날 때부터 신체 구조나 기능에 이상을 가지고 태어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더 약한 아이를 더 챙기는 것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동생 종현의 ..
“아직 어려서 몰라”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10대 시절 그 말이 너무 싫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들어주지도 않고 결론을 내버리는 어른들이 답답했습니다. 그 기억이 있어서인지, 베테랑 형사 서재혁과 금수저 신입 김중호가 티격태격하며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끝장수사》를 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이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단순한 수사 버디물 그 이상이었습니다.끝장수사가 만들어진 배경과 실화 모티브《끝장수사》는 완전한 창작이 아닙니다. 일본의 실제 억울한 사건 네 가지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점이 제게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환결 선고 직전 진범이 자백해 석방된 우아지마 사건, DNA 재감정으로 무고함이 밝혀진 아시카가 사건, 만기 복역 후 출소했는데 나중에 진범이 따로 밝혀진 히미 사건 ..
영화가 끝나고 불을 켜는 순간, 제가 처음 한 행동은 옛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려다 멈춘 것이었습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그런 영화입니다. 퀴어 소재를 다루지만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를 봐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40대 부모가 된 지금, 이 영화는 사랑과 우정을 넘어 자녀를 대하는 방식까지 되돌아보게 했습니다.대도시의 사랑법의 원작과 영화, 무엇이 달라졌나솔직히 영화를 보기 전, 원작 소설을 먼저 읽었던 게 오히려 부담이었습니다. 박상영 작가의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은 여러 단편을 묶은 작품으로, 영화는 그중 단편 「재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원작 단편에서는 흥수의 시점이 서사의 중심축입니다. 그가 재희라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시선 안에서 이야기가 흘러갑니다.반면 영화는..
비 오는 아침, 학교 가기 싫다고 토라진 아이를 그냥 보낸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영화 《소원》을 봤을 때 그 장면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 평범한 아침이, 한 가족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다는 설정이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 그 이후를 살아가는 한 아이와 가족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소원 속 가족의 사랑 — 안아주고 싶어도 기다려야 했던 아버지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동훈, 작은 문구점을 운영하는 어머니 미희, 그리고 코코몽을 좋아하는 초등학생 소원. 이 세 사람의 가족은 특별히 넉넉하지도, 특별히 부족하지도 않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평범함이 영화 도입부 내내 꼼꼼하게 그려지는 이유가 있습니다. 관객이 이 가족을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감시'라는 단어가 나쁜 사람을 잡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감시자들》을 보고 나서 떠오른 건 범인이 아니라 제 집 거실에 달려 있던 카메라였습니다. 감시가 보호인지, 통제인지 —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얇다는 걸 이 영화가 건드려 줬습니다.감시와 신뢰 — 같은 카메라, 다른 느낌영화에서 감시반은 "모든 임무는 감시에서 시작해 감시로 끝난다"는 원칙 아래 움직입니다. 허가된 감시 대상이 아니면 눈앞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규칙도 있습니다. 처음엔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다 보니 이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가 납득이 됐습니다.여기서 불법 사찰이란 국가나 기관이 법적 근거 없이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영..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지만, 결국 과거를 바꾸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영화를 멈추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그리고 그 바꿈이 정말 저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을지에 대해서요.어바웃 타임 속 시간여행이라는 장치, 그게 핵심이 아니었다《어바웃 타임》은 남자 주인공 팀이 21살 생일날 아버지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손을 쥐고 어두운 공간을 떠올리면 과거의 특정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의 장르 분류는 로맨스·판타지지만, 솔직히 처음엔 '또 시간여행 소재 로맨스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전혀 그런 영화가 아니었습니다.팀은 이 능력을 처음에는 사랑을 쟁취하는 데 씁니다. 어둠 속에서 대화하는 특별..
아이를 키우면서 정말 '나'를 위해 뭔가를 한 게 언제였나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런 날 우연히 틀었던 영화가 《리틀 포레스트》였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냥 예쁜 시골 영화겠거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오래 못 꺼냈던 질문들이 올라왔거든요.리틀 포레스트가 힐링영화인 줄 알았는데, 먼저 찔리더라고요《리틀 포레스트》는 임용시험에 떨어지고 연애도 끝나고 취업도 막힌 혜원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처음엔 도망친 것처럼 보이지만, 고향에서 사계절을 보내며 조금씩 자신을 회복해 가는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임순례 감독이고, 원작은 일본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작품입니다. 일본 원작 역시 두 편의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계절 감성이나 음식 묘사..
결혼 전에 친정 어머니 손에 이끌려 사주와 궁합을 보러 다닌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과는 잘 맞고, 저 부분은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 《관상》을 보고 나서야 그때의 그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과연 사람의 얼굴 하나로 그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읽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함께요.관상은 조선의 권력 다툼 속으로 끌려든 관상가영화의 주인공 내경은 원래 선비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역모에 연루되면서 하루아침에 몰락했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관상(觀相)을 배우게 됩니다. 관상이란 사람의 얼굴 생김새, 눈빛, 이마, 코, 입의 형태 등을 보고 그 사람의 성격·운명·기질을 판단하는 동양의 전통 술법입니다. 쉽게 말해 얼굴을 ..
원작을 사랑하면 리메이크를 보지 말라는 말, 정말 맞는 걸까요. 저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2007년 주걸륜 감독의 대만 원작 《말할 수 없는 비밀》은 제 영화 플레이리스트에 지금도 올라있는 작품입니다. 그 영화의 한국 리메이크가 2025년 개봉했고, 저는 기대 반 불안 반으로 극장 의자에 앉았습니다.말할 수 없는 비밀 20년 된 원작, 왜 지금 리메이크인가《말할 수 없는 비밀》 원작은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주걸륜 감독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았고,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그가 작중 고난도 연주곡을 직접 소화하면서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피아노 배틀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소름이 돋는 수준입니다. 당시 대만 자국 영화 점유율이 1~2%에 불과하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