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규칙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한참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영화 《리바운드》 얘기입니다. 2012년 부산 중앙고등학교 농구부가 교체 선수도 없이 단 여섯 명으로 전국대회 4강에 오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보는 내내 "이게 진짜라고?" 싶어서 되레 당황스러울 정도였습니다.리바운드가 실화라서 더 믿기 어려운, 그 황당한 이야기솔직히 처음엔 이게 실화라는 사실이 오히려 발목을 잡았습니다. 픽션이었다면 "좀 과하게 만들었네" 하고 넘겼을 텐데,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하니까 더 황당하게 느껴진 역설이었습니다. 2012년 당시 부산 중앙고 농구부는 교체 선수 없이 여섯 명만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했고, 그중 네 명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처음 농구공을 제대로 잡은 수준이었..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킬링타임용으로 틀었다가, 마지막 20분 동안 멈추지도 못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2010년 개봉작 는 죽으려던 남자 강상만이 귀신 네 명과 동거하게 되는 이야기인데, 그 귀신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이 영화가 처음부터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는지 뒤통수를 제대로 맞게 됩니다.헬로우고스트 네 명의 정체 —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어지는 이유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첫 장면부터 다시 돌려봤습니다. 그러자 앞에서 그냥 웃고 넘겼던 장면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상만에게 빙의(憑依)하는 귀신이 네 명 등장합니다. 빙의란 다른 존재의 영혼이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영화에서는 귀신들이 상만의 몸을 실제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구현됩니..
2026년 한국 영화 기대작으로 손꼽히던 《휴민트》가 드디어 관객들과 만났습니다.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의 조인성과 국가보위성 조장 박건 역의 박정민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배경으로 펼치는 남북한 첩보 대결은 개봉 전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아왔습니다.조인성이 완성한 블랙 요원 조 과장의 무게감영화 《휴민트》의 주인공 조인성은 국정원의 블랙 요원 조 과장을 연기합니다. '블랙 요원'이란 공식적으로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최고 기밀 요원을 뜻하는 첩보 용어로, 단순한 액션 히어로와는 결이 다른 캐릭터입니다. 조인성은 이 역할을 통해 그간 쌓아온 필모그래피 위에 한층 묵직한 무게감을 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조인성에 대한 시선이 단순히 '잘생긴 배우'를 넘어섰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
가볍게 보다가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소지섭과 한효주 주연의 이 멜로 영화, 처음엔 그냥 시간이나 때울 생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손이 멈추고 화면만 보고 있더군요. 죽어있던 사랑에 대한 감정이 되살아난다는 게 이런 느낌인지, 오랜만에 제대로 실감했습니다.영화 오직 그대만 속 주인공들의 첫 만남 — 훔쳐보는 눈빛 하나로 다 설명됩니다혹시 첫눈에 반한다는 게 진짜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솔직히 오랫동안 그걸 낭만적 과장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주인공 철민은 고아 출신으로, 거친 세상 속에서 홀로 버텨온 인물입니다. 가족의 따뜻한 손길을 거의 받아본 적 없는 남자가, 어느 날 시각장애를 가진 여인 정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도 할아버지와 드라마를..
키스 한 번 없는 멜로 영화가 25년 넘게 레전드로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영화를 소설로 먼저 읽었습니다. 하도 크게 웃어서 도서관에서 눈총을 받을 정도였는데, 그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에 설렜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01년 개봉한 엽기적인 그녀는 단순한 로맨스 코미디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을 통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 켠에 묻어둔 영화입니다.영화 엽기적인 그녀로 추억 소환 — 신촌에서 부평역까지, 그 시절 거리가 살아있었다일반적으로 로맨스 영화는 세트장이나 관광지 같은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펼쳐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엽기적인 그녀는 달랐습니다. 신촌 골목, 부평역 앞 거리, 동네 옥수당 분식집 같은 공간들이 스크린 안에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도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던 적이 있다면,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는 꽤 불편하게 찔리는 작품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스무 살의 제 모습이 자꾸 겹쳐 보여서 끝까지 마음이 편하질 않았습니다. 흔한 멜로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보다 '표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습니다.남자가 사랑할 때 속 서툰 사랑 — 표현 못 한 마음은 결국 아무도 모른다일수를 관리하는 거칠고 무뚝뚝한 남자 태일은 채무자의 딸 호정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배워갑니다. 문제는 그가 사랑의 감정(愛情)은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언어를 전혀 몰랐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애정이란 단순히 감정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방..
영화 은 90년대 아이돌 감성을 소환한 음악 코미디입니다. 저도 보면서 꽤 기대를 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노래는 확실히 귀에 꽂히는데 웃음 코드가 제 것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그럼에도 "니가 좋아~"가 귓가에 맴돌아 못 잊겠더라고요. 영화 와일드 씽은 90년대 아이돌 시절, 그때 저는 이랬습니다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맞아, 나도 저랬지'였습니다. 학창 시절, 좋아하는 오빠들이 라디오에 나온다 하면 카세트테이프를 꽂고 녹음 버튼을 눌렀고, TV에 나오는 날엔 VCR 예약녹화는 기본이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엔 팬덤(fandom)이라는 개념이 공식적으로 정립되기 전이었습니다. 여기서 팬덤이란 특정 가수나 그룹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팬 집단 전체를 일컫는 말인데, 당시엔 그런 단어도..
독립영화를 보면서 "이건 나만 이렇게 생각 하는 건가?"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를 보고 나서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노령 인구 문제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고 갔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안에 담긴 게 노인 문제만이 아니었거든요. 먹는다는 행위, 혼자 산다는 현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단순한 줄거리 속에 이것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다 보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사람과 고기는 독립영화가 정면으로 꺼낸 노인 빈곤의 실체사람과 고기는 양종현 감독이 연출하고 임나무 작가가 각본을 쓴 작품입니다. 박근영, 장용, 예수정 세 배우가 사실상 영화 전체를 삼등분해서 이끌어가는 구조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도 없고, 반전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 이야기입니다.영화는 독거노인(獨居老人)의 일상으..
솔직히 처음 틀었을 때 다큐멘터리인 줄 알았습니다. 화면이 너무 담담해서, 이게 연출된 장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영화 는 1970년대 서울의 한 보육원을 배경으로, 아홉 살 소녀 진니가 아빠에게 버려진 뒤 이별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을 조용하게 따라갑니다. 사랑을 알기도 전에 이별이 먼저 찾아온 아이의 이야기입니다.영화 여행자 속 아홉 살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 — 보육원과 해외입양의 시대영화를 보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버텼을까?" 하고 말입니다.영화의 배경인 1975년은 대한민국 해외입양(international adoption)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해로 기록됩니다. 여기서 해외입양이란, 국내에서 양육이 어렵다고 판단된 아동..
어릴 때 받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야 터진다고 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학창 시절엔 그냥 눌려 살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굿 윌 헌팅을 다시 봤을 때, 숀이 윌에게 반복해서 건네는 그 한마디가 제 얘기처럼 들려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굿 월 헌팅 속 윌의 상처 — 똑똑한 사람이 왜 스스로를 망치는가혹시 이런 사람 주변에 있지 않으신가요? 분명히 잘할 수 있는데, 막상 기회가 오면 스스로 걷어차 버리는 사람. 굿 윌 헌팅의 윌이 딱 그렇습니다.윌은 MIT 복도 칠판에 붙어 있던 수학 난제를 풀어놓고는 들키기 전에 도망칩니다.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충돌하는 거죠. 심리학에서는 이를 접근-회피 갈등(approach-avoidance conf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