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위해 산다는 게 정말 아름다운 일일까요. 영화 「국제시장」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이 질문을 놓지 못했습니다. 덕수의 삶이 감동적으로만 보이지 않았거든요. 엄마의 눈으로 다시 보니, 그 희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국제시장이 지금 우리에게 남기는 것영화를 보고 난 뒤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 먹먹함의 정체가 뭔지 며칠을 생각했는데, 결국 이 영화는 저에게 '부모님의 시간을 다시 보는 창'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집단적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전쟁이나 재난처럼 사회 전체가 공유한 비극적 경험이 세대를 넘어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6.25 전쟁과 이산가족의 상처는 단순히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만..
영화를 틀 때만 해도 그냥 코미디 한 편 보겠다 싶었습니다. 제목도 가볍고, 예고편도 어딘가 웃긴 구석이 있어서 방심한 채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오랫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2021년 개봉작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내겐 너무 소중한 너를 본 제가 몰랐던 현실, 시청각 장애일반적으로 장애인 지원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부끄럽게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시청각장애(DeafBlindness)라는 개념 자체를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청각장애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을 동..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그냥 웃기고 눈물 나는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작품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나서, 제가 첫 관람 때 놓쳤던 것들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감동적인 부녀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 사법 구조가 한 인간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담은 영화였습니다.7번방의 선물의 실화 각색이라는 사실이 바꿔놓은 것들《7번방의 선물》은 2013년 개봉 당시 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저는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 옆 사람이 민망할 정도로 울었는데, 그게 순수하게 부녀의 사랑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실화 기반 각색(fact-based adaptation)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감정의 결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실화 기반 각..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힐링 로맨스'라는 장르를 좀 우습게 봤습니다. 갈등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고, 그냥 예쁜 배우들이 예쁜 곳에서 예쁘게 사랑하는 영화 아니냐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이게 취향의 문제인지, 아니면 제가 지금 삶의 어떤 지점에 있어서인지, 그게 궁금해졌습니다.좋은 날 같은 영화, 다른 감상 — 내러티브 공감의 차이중학생 때 처음 이런 류의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이 예쁘다, 배경이 좋다, 그 정도에서 감상이 멈췄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때는 감정선(emotional arc)이라는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감정선이란 등장인물이 이야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가를 보여주는 서사의 흐름을 말합니다.고등학생 ..
막내를 치료실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혼자 울었던 날이 있습니다.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형이 "엄마, 나도 같이 가면 안 돼?"라고 했는데 저는 그냥 "다음에"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면서 그 날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장애를 가진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라는 것, 이 영화는 그걸 정면으로 건드립니다.그것만이 내 세상 속 조아와 진태, 어색한 두 사람이 가족이 되기까지영화는 전직 복서 조아가 어머니를 우연히 재회하면서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서로를 모른 채 살아온 형제, 조아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진태의 이야기입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Autism Spectrum Disorder)란 사회적 ..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눈이 퉁퉁 부을 줄은 몰랐거든요.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단종과 엄흥도 이야기입니다. 짧은 역사 기록이 이렇게 긴 여운으로 남을 수 있다는 게, 극장을 나오면서도 한동안 믿기지 않았습니다.왕과 사는 남자 속 단종의 적통성, 그 무게가 비극을 만들었다제가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단종은 그냥 불쌍하게 죽은 어린 왕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 기록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이야기가 전혀 달랐습니다.단종은 조선 역사상 거의 유례없는 수준의 적통성(嫡統性)을 갖춘 왕이었습니다. 여기서 적통성이란 왕위 계승에서 혈통, 적자 여부, 계승 순서, 직위 절차를 모두 충족하는 정통성을 의미합니다..
아이를 위해 선택한 영화가 정작 엄마를 돌아보게 만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주토피아2》를 보고 나오면서 영화 이야기보다 제가 아이에게 했던 말들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닉과 주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인데, 제 머릿속에서는 자꾸 다른 장면이 재생됐습니다. "친구들은 다 하는데 왜 너는 안 해?" 제가 아이에게 했던 바로 그 말이었습니다.《주토피아 2》가 꺼낸 질문 — 다양성이라는 배경《주토피아 2》는 전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파충류, 포유류, 조류가 함께 사는 도시 주토피아에서 또 다른 음모가 시작되고, 주디 홉스와 닉 와일드가 다시 한번 손을 맞잡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핵심에는 링슬링 가문이라는 오랜 기득권 세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파충류 집단을 도시 외곽..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없이 가방을 내려놓던 날이 있었습니다. 반 친구 한 명이 장난의 표적이 됐고, 처음엔 한두 명이 시작했지만 나중엔 주변이 따라 웃으면서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끼어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 뒤, 영화 《군체》를 봤습니다. 화면 속 장면들이 그날 아이의 목소리와 계속 겹쳐 보였습니다.군체에서 집단지성이 공포가 되는 순간영화 《군체》는 좀비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갖게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합니다. 여기서 집단지성이란 개별 개체가 각자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한 개체의 학습이 곧 집단 전체의 진화로 이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처음엔 짐승처럼 기어 다니던 감염자들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이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거나 인간의 ..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오드리 헵번 원작보다 나중에 봤습니다. 1995년 리메이크작인 줄도 모르고 그냥 채널을 돌리다 해리슨 포드 얼굴이 나와서 멈췄는데, 다 보고 나서 뒤늦게 원작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운전사 딸이 파리에서 숙녀로 변해 돌아오는 이야기, 그 뻔한 구도가 왜 이렇게 오래도록 남는지, 직접 두 편을 비교해보며 정리해봤습니다.사브리나 속 배경과 원작 — 1954년의 고전이 1995년에 다시 태어난 이유영화의 배경은 뉴욕주 롱 아일랜드의 골드 코스트 지역에 자리한 대저택입니다. 롤스로이스를 닦는 운전사와 그 딸 사브리나,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상류층 파티. 주인집 형제 라이너스와 데이비드를 나무 위에서 몰래 내려다보던 소녀가 파리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는 설정은, 1954년..
전소민, 김도현 주연의 영화 은 2025년 3월 25일 개봉했습니다. 개봉 전부터 조용히 입소문이 돌던 작품인데, 저는 영상으로 먼저 내용을 접했을 때 한 장면에서 예상치 못하게 울컥했습니다. 자극적인 것들이 넘쳐나는 요즘, 이렇게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아직 만들어진다는 사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영화 속 배경은 시골 여자고등학교, 그리고 괴짜 담임의 등장일반적으로 학교 배경 청춘 영화라고 하면, 입시 스트레스나 왕따 같은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다릅니다. 시골 여자고등학교에 새로 부임한 담임 정희주가 첫날부터 던지는 말이 걸작입니다. "잔소리 필요 없고, 어지간하면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핸드폰도 안 걷겠다, 반장도 일주일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