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살짜리 아기가 납치범 세 명을 혼자 농락할 수 있을까요? 말도 못 하고 걷지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가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 처음엔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994년 개봉한 《베이비 데이 아웃》이 어떤 영화인지,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베이비 데이 아웃은 90년대 슬랩스틱 코미디의 공식, 그리고 이 영화가 다른 이유일반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라고 하면 과장된 몸개그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의 반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슬랩스틱이란 배우가 직접 몸을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등 신체적 해프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 기법을 말합니다. 1990년대에는 《나 홀..
1980년 광주, 그 한 발의 총성이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은 주인공 김영호가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 절규가 만들어진 과정을 역순으로 펼쳐 보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첫 20분 동안 당황했습니다. 이야기가 거꾸로 흐른다는 걸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그 당혹감이 오히려 이 영화가 의도한 감각이었다는 걸,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박하사탕 영화 속 시대적 배경 — 개인을 부수는 역사의 무게《박하사탕》의 이야기는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을 관통합니다. 영화는 1999년 현재에서 출발해 1979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reverse chronology..
꿈을 포기하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작 《꽃피는 봄이 오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민식이 《올드보이》 직후 선택한 차기작이라는 말에 처음엔 의아했는데, 보고 나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최민식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꽃피는 봄이 오면 영화 속 배경 — 꿈과 현실 사이, 이 남자의 자리영화 속 주인공 현우를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떠올랐다. 우리 학교에도 밴드부가 있었다. 나도 음악을 좋아했고 밴드부 활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악기를 배우고 활동하려면 비용도 필요했고, 나에게는 그 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하고 싶..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코미디 판타지라는 장르 설명에 부담 없이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할머니가 20대로 돌아간다는 설정 뒤에 가족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젊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숨겨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습니다.수상한 그녀 속 사진관 앞의 할머니, 그리고 내가 본 사진첩영화의 배경은 단순합니다. 욕 잘하고, 며느리한테 잔소리 늘어놓고, 손주들한테는 아낌없이 퍼주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 오말순. 그런데 그녀가 우연히 들어간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나오면서 갑자기 20대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이른바 판타지적 장치(fantast..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호스피스 배경의 영화가 그냥 우울한 신파물이라고 지레짐작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안녕하세요》를 보고 나서 그 편견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죽으러 들어간 곳에서 오히려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이야기. 보는 내내 제 일상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졌는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영화 안녕하세요의 무대배경이 호스피스가 된 이유영화의 배경이 되는 호스피스(Hospice)는 완치가 어려운 말기 환자들이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신체적·정서적 돌봄을 제공하는 의료 환경입니다. 쉽게 말해, 치료보다는 삶의 질에 집중하는 완화의료(Palliative Care)의 핵심 공간입니다. 완화의료란 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통증과 불안을 줄이고 환자가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의료 철..
솔직히 저는 어릴 때 이 영화를 보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냥 시골 아이 이야기겠거니 했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나서 다시 꺼내 보니, 화면 속 할머니 손이 눈에 밟혀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2002년 개봉작 《집으로…》가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 단순히 "눈물 나는 영화"라서가 아닙니다. 이 글에서 그 이유를 제 나름의 방식으로 짚어보겠습니다.영화 집으로 개봉 배경 — 2002년, 왜 이 영화가 터졌을까《집으로…》는 2002년 한국 영화 시장이 블록버스터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기에 개봉했습니다. 당시 충무로는 대규모 자본과 스타 캐스팅이 흥행의 공식처럼 여겨지던 때였죠. 그런데 이 영화는 정반대였습니다. 제작비도 소박하고, 주연 두 명 중 한 명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77세 비전공자 ..
같은 영화를 10대에 보고, 40대에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른 장면에서 눈물이 나온 경험, 혹시 있으십니까? 저는 「늑대의 유혹」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강동원의 얼굴만 눈에 들어왔는데, 세월이 지나 다시 들여다보니 그 안에 제10대, 20대, 30대가 다 들어 있었습니다.늑대의 유혹을 접한 시대별 감상, 같은 영화가 다르게 보이는 이유「늑대의 유혹」은 2004년 개봉한 청춘 로맨스 영화입니다. 주인공 정한경을 사이에 두고 반해원과 정태성이 갈등하는 구조인데, 지금 생각하면 이 단순해 보이는 삼각관계가 어떤 시기에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읽힙니다.저는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10대 후반이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스토리보다 반해원이 한경이 앞에서 무작정 손..
결말을 알면서도 또 봅니다. 고1 때 처음 봤던 저도 재개봉 소식에 결국 영화관 표를 끊었고, 끝나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못 일어났습니다. 타이타닉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닙니다. 1912년 실제 침몰 사건을 뼈대로 삼아, 계층·자유·희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사랑 이야기 안에 압축해 넣은 작품입니다.타이타닉 영화 속 역사적 배경 — 실제 사건이 영화를 다르게 만든다타이타닉호는 1912년 4월 15일 새벽, 빙산과 충돌한 지 약 2시간 40분 만에 북대서양에 침몰했습니다. 탑승자 2,224명 가운데 1,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이 사건은 20세기 최대 해양 참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출처: History.com).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 역사적 침몰 사건을 단순한 재난 배경으로 쓰지 않았습니다. 영화는 노..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빌리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 아이의 부모가 된 지금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어 있었습니다. 탄광촌 아버지가 파업 동료들 앞에서 배신자 소리를 들으며 광산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 장면, 지금도 가슴 한구석이 먹먹합니다. 누군가의 비범한 생이 빛나는 동안, 그 뒤에서 수많은 평범한 생들이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됐습니다.빌리 엘리언트 영화 속 아버지의 희생 —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빌리가 아닙니다제가 학생 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빌리의 의지와 열정에만 집중했습니다.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걸 저렇게 밀어붙일 용기가 있을까를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제가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습니다.이..
10대 끝자락에 처음 봤을 때, 저는 '로망'이라는 단어의 뜻을 이 영화로 배웠습니다. 1998년작 「태양은 없다」는 이정재와 정우성이 23년 우정의 씨앗을 심은 작품이자, 지금까지도 한국 청춘영화의 기준점으로 불리는 영화입니다. 40을 앞둔 지금 다시 꺼내보니, 그 시절의 냄새와 패션과 감각이 고스란히 살아있어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뭉클했습니다.태양은 없다 영화 속 브로맨스의 시작 — 소주 8병과 제트스키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두 배우가 친해진 계기가 거창한 드라마가 아니라, 밤샘 촬영을 마치고 조식을 먹다가 "한잔할까요?" 한마디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이요. 그렇게 소주 8병을 비운 뒤, 근처에서 제트스키를 발견하고는 바닷가로 끌고 나가 함께 탔다는 일화는 지금 들어도 웃음이 나옵니다. 이게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