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의 불이 켜졌는데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비광》을 보고 난 뒤였습니다.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이야기라고 알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막상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오른 것은 아이들의 얼굴이었습니다.제가 직접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이 영화가 범죄 스릴러보다는 가족의 감정과 관계를 그리는 서사에 훨씬 더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야기가 40대 부모인 저를 꽤 오래 붙잡아두었습니다.비광 속 가족연대, 제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비광》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솔직히 그 뜻을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고스톱의 화투패에서 가져온 제목이었습니다. ‘비광’은 비(雨)와 광(光)의 이미지가 겹쳐 있는 독특한 패로, 영화에서는 그 의미를 단순한 화투패에..
2004년 개봉한 영화 《효자동 이발사》는 이승만 정권부터 박정희 정권까지 격동의 현대사를 한 이발사의 눈으로 따라갑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는 정치 풍자보다 이발소라는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남 해남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에게 이발소는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효자동 이발사 속에 담긴 시대 — 이 영화가 선택한 배경이 왜 '이발소'였을까요?영화의 주인공 성한모는 효자동, 즉 청와대 인근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인물입니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였던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4·19 혁명, 5·16 군사정변, 유신 체제, 10·26 사태까지 한국 현대사의 주요 분기점이 모두 이 이발소를 통해 스쳐 지나갑니다.여기서 사사오입이란 1954년 이승만 정권..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 안에 '피해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된 틀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을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40대 엄마로서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왔는지, 이 영화가 조용하고 날카롭게 짚어왔기 때문입니다.세계의 주인 속 서명지 한 장이 저를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혹시 길을 걷다가 서명운동을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런 상황을 꽤 자주 마주쳤는데,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 그냥 지나쳤습니다. '내가 서명한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이었고, 바쁘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그런데 영화 속 서명운동 장면을 보고 나서, 제가 놓치고 있던 전혀 다른 문제가 보였습니다. 서명을 하..
개봉 전 쇼츠 1억 뷰, 예매율 28.2%로 압도적 1위를 찍은 영화가 나왔습니다. 《퍼스트 라이드》입니다. 저는 솔직히 처음엔 그냥 웃기는 여행 코미디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퍼스트 라이드 속 10년째 지키지 못한 약속영화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24년을 함께한 네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전국 수능 만점을 맞고 부모님께 태국 여행을 졸업 선물로 받아낸 태정, 자유롭고 장난기 넘치는 도진, 선한 눈망울을 가진 금복, 그리고 언젠가 뉴질랜드로 떠나게 될 연민. 이 네 사람이 고3 마지막을 불태우며 태국 여행을 계획하지만, 버스를 놓치는 황당한 사고로 첫 여행은 허무하게 무산됩니다.그리고 시간이 흘러 10년이 지납니다. 태정은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었고, 도진은 오랜 시..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기억을 잃어도 사랑은 남는다"는 말을 그냥 위로용 문구쯤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잠이 들면 하루의 기억을 잊는 소녀와, 그 소녀의 일기장을 행복한 추억으로 채워주려는 소년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제 머릿속에는 엉뚱하게도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2남 1녀를 키운 엄마로서 이 영화가 던진 질문이 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속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기억영화 속 서윤은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을 앓고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일정한 시점 이후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거나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나타나는 기억장애를 뜻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거울부터 들여다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열아홉 살, 버스에서 매일 마주치던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얼굴의 점이 자꾸만 신경 쓰였습니다. 영화 《고백의 역사》를 보다가 불쑥 그 시절이 떠오른 건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바꾸려 했던 그 마음, 그리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그 선택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고백의 역사 속 콤플렉스, 그리고 그것을 키우는 시선영화 속 박세리는 곱슬머리를 콤플렉스로 여깁니다. 제가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웃음보다 먼저 나온 것은 "나도 그랬는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얼굴에 점이 많았습니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당시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점이 제일 먼..
아이가 "엄마는 나한테 관심 없잖아"라고 말하던 순간,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분명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디서 나온 건지 한동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하이파이브》를 보고 난 뒤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초능력을 다룬 영화인데, 정작 제 마음에 남은 건 능력이 아니라 '사랑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하이파이브에서 초능력보다 낯선 것, 서로의 마음《하이파이브》는 장기이식을 소재로 합니다. 실제 장기이식은 기증자의 장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 의료 행위지만, 영화에서는 장기이식을 통해 기증자의 특별한 능력까지 전달된다는 판타지 설정을 사용합니다.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갖게 되고, 폐를 이식받은 사람은 주변을 날려버릴 만한 폐활량을 얻습니다..
2025년 개봉작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를 보고 나서 며칠째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속 엄마가 딸의 공연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장면, 마지막 통화에서 둘 다 짜증과 미안함만 남긴 채 전화가 끊겼던 그 장면 때문입니다. 저는 2남 1녀를 키운 엄마인데, 솔직히 그 통화 장면이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속 기다림이 사랑이다 — 놓아줘야 하는 순간영화 속 설라가 인형에게 해주는 말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금도 너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 춤이 좋으면 할 수 있는 만큼 해봐. 후회 안 될 만큼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때 관둬." 해결책이 아니라 방향을 주는 말입니다.저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얼마나 했을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
솔직히 저는 《인사이드 아웃》을 처음 봤을 때 그냥 아이들용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기쁨이 슬픔을 밀어내던 장면이 어린 시절 제 모습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심리학 자문을 받아 설계됐다는 걸 알고 나서는, 캐릭터 하나하나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인사이드 아웃》 감정 캐릭터의 디자인에 담긴 의미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디자인은 귀엽거나 눈에 띄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캐릭터들은 디자인 하나하나에 심리학적 의도가 촘촘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를 확인하고 나니, 단순히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얕은 감상이었는지 부끄러워졌습니다.기쁨의 디자..
개봉 후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고 있는 한국 코미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좀비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참 동안 극장 로비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또 웃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그래도 나는 내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좀비딸 줄거리, 좀비가 된 딸을 지키려는 아버지《좀비딸》은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실사화한 작품으로,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는 평범한 아버지 정환이 감염이 확산된 세상에서 딸 수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장르는 ‘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인데, 여기서 아포칼립스란 문명의 붕괴 수준에 이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