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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벤 스틸러 감독·주연의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16년을 같은 자리에서 묵묵히 일해 온 평범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도 변화를 유독 무서워하는 사람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꽤 오래 마음이 울렸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실제로 말하는 것 — '떠남'이 아니라 '내디딤'
제목만 보면 판타지 코미디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주인공 월터는 틈만 나면 데이드림(daydream), 즉 백일몽에 빠져듭니다. 여기서 데이드림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잠시 현실을 벗어나 머릿속으로 원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공상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마음속으로 영웅이 되는 거죠.
그런데 영화가 진짜 꺼내는 이야기는 조금 다릅니다. 월터는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의 네거티브 필름(negative film) 관리자로 16년을 일해 왔습니다. 네거티브 필름이란 빛과 색이 반전된 상태의 원본 필름으로, 인화 전 단계의 사진 원본을 의미합니다. 잡지가 종이 발행을 끝내기 전, 마지막 표지를 장식할 25번 필름이 사라지면서 월터는 처음으로 자신의 일상 밖으로 발을 내딛습니다.
그린란드, 아이슬란드, 히말라야. 월터의 여정은 화려하지만, 제가 영화를 보며 진짜 마음이 움직인 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Sean O'Connell)이 히말라야에서 눈표범(snow leopard)을 마주하고도 셔터를 누르지 않는 장면입니다. 그는 정말 마음에 드는 순간에는 카메라에 방해받지 않고 그 순간 안에 머물고 싶다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데 급급한 요즘, 저는 그 장면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도 주목할 만합니다. 내러티브 구조란 이야기가 어떤 흐름과 인과관계로 엮이는지를 가리킵니다. 이 영화는 상상과 현실을 반복적으로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월터의 내면이 바깥 세계로 조금씩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결말에서 25번 사진의 주인공이 월터 자신이었다는 반전은, 이 구조 덕분에 더 크게 울립니다.
- 배경: 아이슬란드 실제 로케이션 촬영 — 월터가 스케이트보드로 산길을 내달리는 장면이 특히 유명합니다
- 음악: 호세 곤잘레스(José González), 오브 몬스터스 앤 멘(Of Monsters and Men)의 곡과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가 여행의 질감을 살립니다
- 메시지: 평범한 성실함도 충분히 삶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 — "보통의 하루"에 대한 따뜻한 옹호
- 주연·감독: 벤 스틸러(Ben Stiller), 공동 주연 크리스틴 위그(Kristen Wiig), 숀 펜(Sean Penn)
변화가 두려운 사람에게 이 영화가 건네는 것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변화를 유독 무서워합니다. 늘 다니던 길, 익숙한 마트, 아침마다 마주치는 이웃 얼굴. 그 사소한 것들이 하루를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다는 걸 저는 인천을 떠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남편이 고향에서 사업을 하겠다며 먼저 시골로 내려갔고, 저와 아이들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큰아이들은 당시 중학생이었습니다. 한창 예민한 나이에 친구들과 헤어져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가장 걱정하던 일이 현실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우리 집 아침은 울음으로 시작됐습니다. 딸은 매일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울었고, 아들은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다시 이사를 가기로.
변화를 그토록 두려워하던 제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또 한 번 모든 걸 뒤집은 겁니다. 월터처럼 그린란드나 히말라야를 간 건 아니었지만, 제 경험상 이건 그것 못지않게 큰 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매일 울던 딸도, 학교를 그만두려던 아들도 고등학교까지 무사히 졸업했고,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마음을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라고 부릅니다. 현상 유지 편향이란 더 나은 선택지가 있어도 지금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쪽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변화로 잃을 수 있는 것이 얻을 것보다 크게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을 익숙한 자리에 머물게 만듭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에 따르면 불안은 긴장감, 걱정스러운 생각, 그리고 혈압 상승 같은 신체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그만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뜻이고, 저는 이 두려움을 억누르기보다 '내가 지금 무섭구나' 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월터도 결국 상상 속 영웅이 되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안은 채 움직였기 때문에 달라진 겁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서 움직이는 건 없습니다. 두려움을 들고 그냥 한 발짝 나가는 것뿐이더라고요.
또 한 가지, 영화에서 제 눈을 붙잡은 것은 월터의 어릴 적 물건들입니다. 어머니가 집을 정리하다 꺼낸 물건들 속에서, 월터가 한때 꿈꾸고 도전하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요. 언젠가 가슴이 뛰었던 무언가가 있었는데, 현실에 치이면서 조용히 서랍 속에 넣어두고 사는 것. 출처: 세계보건기구(WHO)는 정신 건강을 삶의 스트레스에 대처하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게 해 주는 상태로 설명합니다. 서랍 속에 넣어 둔 능력을 다시 꺼내는 월터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 공명하는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결말에서 25번 사진이 뭔가요?
A. 결말에서 25번 사진은 월터 본인의 모습입니다. 사진작가 숀 오코넬이 라이프 매거진의 정신을 담을 마지막 표지로 선택한 사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월터의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특별한 모험보다 성실한 일상 자체가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반전입니다.
Q. 이 영화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거 맞나요? 어느 장면이 유명해요?
A. 맞습니다. 영화의 상당 부분이 아이슬란드 실제 자연환경에서 촬영됐습니다. 그중 월터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광활한 산길을 내달리는 장면이 가장 많이 회자됩니다. 배경 풍경만으로도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드는 영화로 자주 이야기됩니다.
Q. 공감 포인트가 어디에 있는 영화예요? 저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요?
A. 화려한 액션보다 "나도 저런 사람이었는데"라는 감각을 건드리는 영화입니다. 꿈을 접고 바쁘게 살아온 분, 변화가 무서워 망설이고 있는 분이라면 특히 공명하는 장면이 많을 겁니다. 저 역시 잔잔한 영화를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이 영화는 끝나고 나서 한참 마음에 남았습니다.
Q. 음악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던데, 어떤 가수들 노래가 나와요?
A. 호세 곤잘레스(José González)와 아이슬란드 밴드 오브 몬스터스 앤 멘(Of Monsters and Men)의 곡들이 대표적입니다. 특히 월터가 헬기에 뛰어오르는 장면에서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Space Oddity'가 흐르며 영화의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립니다. OST 자체로도 듣기 좋아서 영화 보고 나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결론
저는 여전히 변화가 두렵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 두려움을 조금 다른 눈으로 보게 됐습니다. 두려움이 크다는 건 그만큼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지금 당장 어딘가로 떠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상만 하던 일에 한 발짝이라도 직접 내디뎌 보라는 것, 그리고 오늘 자신의 자리에서 해내고 있는 평범한 하루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말하는 영화입니다. 제 경험상 이 두 가지 메시지는, 거창한 모험 영화보다 훨씬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꿈을 잊은 채 바쁘게 살고 있다면, 혹은 변화 앞에서 발이 묶인 느낌이라면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보고 나서 뭔가 행동하게 되든, 그냥 오늘 하루를 좀 더 따뜻하게 마무리하게 되든 — 어느 쪽이든 손해 없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