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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리와 나>를 보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화면 속 말리가 아이 옆에서 조용히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십 년 전 기억이 그대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시절 딱 저런 강아지가 있었거든요. 이름은 누룽지였습니다.
영화 말리와 나 공감 — "우리 집 이야기잖아"가 절로 나오는 이유
솔직히 처음엔 그냥 강아지 나오는 가벼운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이건 강아지 영화가 아니라 가족 영화였습니다. 신혼 시절, 임신과 출산, 육아 전쟁, 부부 갈등, 이사까지. 한 가정이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굴곡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원작은 미국의 신문 칼럼니스트 존 그로건(John Grogan)이 쓴 자전적 에세이입니다. 여기서 자전적(autobiographical)이란 작가 본인이 직접 겪은 일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를 말합니다.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죠. 그게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진심의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오웬 윌슨과 제니퍼 애니스톤이 연기하는 부부는 완벽하지 않고, 싸우고, 지쳐 쓰러지면서도 결국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모습이 어떤 화려한 이야기보다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직접 키워 보니 반려동물과 산다는 건 낭만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아침마다 날리는 털을 치우고, 잠깐 자리 비운 사이 뭔가 하나씩 망가져 있고, 훈련을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그 일상이 이 영화에 너무 현실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반려견의 행동을 연구하는 동물행동학(Animal Behavior)의 관점에서 보면, 말리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운동이나 놀이가 부족하면 물건을 물어뜯는 등 말썽을 부리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말리가 사고를 치는 건 성격이 나빠서가 아니라 남는 에너지를 풀 곳이 없어서입니다. 그 사실을 알고 보면 말리가 조금 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 신혼 → 임신 → 출산 → 육아 → 부부 갈등까지, 실제 가정의 시간을 그대로 따라간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꾸며낸 감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러난 진심이 느껴진다
- 말리의 말썽은 활동량이 많은 품종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고, 영화가 이 부분을 현실적으로 담아낸다
누룽지 — 십 년 전 그 강아지가 가르쳐 준 것
남편이 일하는 곳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온 건 꼭 십 년 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작은 생명을 돌보면서 책임감도 배우고,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걱정이 앞섰습니다. 딸아이가 강아지든 큰 개든 모두 무서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딸이 먼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처음엔 방 건너편에서 누룽지를 멀찍이 바라만 보더니, 어느 날은 살금살금 다가가 조심스럽게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작은 손이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릅니다. 심리학에는 무서워하는 대상에 아주 조금씩, 단계적으로 가까워지면서 두려움을 줄여 가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체계적 둔감화(systematic desensitization)라고 부릅니다. 딸은 누룽지 덕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와 비슷한 과정을 밟았던 것 같습니다.
아들은 누룽지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온 집 안을 찾아다녔습니다. "엄마, 누룽지 어디 갔어?" 그 말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렸습니다. 그리고 당시 서너 살이던 막내. 낮잠을 자고 있으면 누룽지는 어김없이 옆으로 와서 나란히 누워 잠들었습니다. 작은 아이와 작은 강아지가 함께 새근새근 자던 그 장면은 제 마음속에서 가장 따뜻한 사진으로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이사를 하게 되면서 누룽지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래도 방학이 되어 찾아가면, 우리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을 만큼 먼 곳에서부터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요. 발소리였는지 냄새였는지, 지금도 참 신기합니다. 개는 냄새를 맡는 세포(후각 수용체)가 최대 약 3억 개로, 사람(약 600만 개)보다 훨씬 많고, 냄새를 맡는 능력은 사람보다 1만~10만 배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PBS NOVA). 누룽지가 우리를 가장 먼저 알아본 건, 그만큼 우리 가족을 기억하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었을 겁니다.
반려견 — 말리가 남긴 것, 누룽지가 남긴 것
영화 후반부는 꽤 깊이 들어갑니다. 유산의 아픔, 부부 사이의 갈등, 지쳐 버린 육아. 말리는 그 모든 시간을 조용히 옆에서 함께합니다. 말썽만 부리던 말리가 가족이 힘들 때는 유독 차분해지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꾸며낸 연출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직접 키워 보니 반려동물은 사람의 기분을 생각보다 훨씬 잘 알아챕니다.
반려동물이 사람의 마음에 주는 영향은 동물 매개 치료(Animal-Assisted Therapy, AAT)라는 분야에서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동물 매개 치료란 훈련된 동물과 함께하는 활동을 통해 사람의 마음과 몸의 건강을 돕는 방법을 말합니다. 동물과의 교감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여기에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이 관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출처: Frontiers in Psychology, Beetz 외 2012). 말리가 힘든 부부 곁에 조용히 있어 주던 장면이 단순히 감성적인 연출로만 보이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누룽지도 그랬습니다. 지금 누룽지는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돌아보면 누룽지는 딸에게 용기를, 아들에게 기다림을, 막내에게 온기를 가르쳐 준 참 좋은 친구였습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옆에 있는 것만으로요.
〈말리와 나〉를 보고 난 뒤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가 슬퍼서이기도 하지만, 누룽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웠던 분이라면 이 영화가 단순한 영화를 넘어 자신의 기억과 겹쳐 보일 겁니다. 그게 이 영화의 진짜 힘인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말리와 나, 어린 아이와 함께 봐도 괜찮을까요?
A. 전반부는 웃음이 많아서 아이와 함께 즐겁게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후반부에 유산 이야기와 반려견이 나이 들어 가는 장면이 나와 꽤 슬퍼집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아이와 볼 때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시고, 보고 나서 이야기를 나눠 주시면 좋습니다.
Q.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정말 저렇게 말썽을 많이 피우나요?
A.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활동량이 아주 많은 품종입니다. 충분히 운동하지 못하거나 훈련과 사회화가 부족하면 물건을 물어뜯는 등 말썽을 부릴 수 있습니다. 물론 개마다 성격이 달라서 모든 래브라도가 말리 같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 말리처럼 훈련 수업을 받아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키우기 전에 하루 산책 시간과 훈련 계획을 꼭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Q. 말리와 나는 실화인가요?
A. 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존 그로건이 반려견 말리와 함께한 13년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썼고, 그 책이 2008년에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진짜 일상에서 나온 이야기라 더 깊이 공감이 됩니다.
Q. 반려동물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이 실제로 있나요?
A. 동물과의 교감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다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희 집의 경우에는 누룽지가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키워 주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느낍니다.
결론
〈말리와 나〉는 화려하거나 극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그냥 한 가족의 시간을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웃다가 울게 되고, 울다가 또 내 가족 생각이 나는 영화입니다. 반려동물을 키워 본 분이라면 분명 어느 장면에서 멈추게 될 겁니다.
누룽지야, 늘 그 자리에서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 줘서 고마웠어. 우리 가족에게 와 줘서 정말 고마웠어. 이 영화를 보실 분은 가능하면 옆에 휴지를 준비해 두고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말리와 나〉 예고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