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플립》을 그냥 예쁜 첫사랑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다시 보니, 화면 속 줄리와 브라이스보다 제 학창시절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친구에게 상처를 줬던 기억, 사과를 못 했던 기억 — 그게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플립을 본 제가 학창 시절에 몰랐던 것 — 한쪽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플립》이 다른 첫사랑 영화와 다른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같은 사건을 줄리 시점과 브라이스 시점으로 번갈아 보여주는 교차 서술(dual perspective narrative) 방식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차 서술이란 동일한 상황을 두 인물이 각자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나란히 보여주는 구성 방식으로, 관객이 어느 한쪽만 편들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입니다.저도..
1살짜리 아기가 납치범 세 명을 혼자 농락할 수 있을까요? 말도 못 하고 걷지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가 영화 한 편을 통째로 이끄는 주인공이 된다는 설정, 처음엔 솔직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1994년 개봉한 《베이비 데이 아웃》이 어떤 영화인지,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것들을 정리해 봤습니다.베이비 데이 아웃은 90년대 슬랩스틱 코미디의 공식, 그리고 이 영화가 다른 이유일반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라고 하면 과장된 몸개그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의 반복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슬랩스틱이란 배우가 직접 몸을 부딪히거나 넘어지는 등 신체적 해프닝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장르 기법을 말합니다. 1990년대에는 《나 홀..
1980년 광주, 그 한 발의 총성이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은 주인공 김영호가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 절규가 만들어진 과정을 역순으로 펼쳐 보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첫 20분 동안 당황했습니다. 이야기가 거꾸로 흐른다는 걸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그 당혹감이 오히려 이 영화가 의도한 감각이었다는 걸,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박하사탕 영화 속 시대적 배경 — 개인을 부수는 역사의 무게《박하사탕》의 이야기는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을 관통합니다. 영화는 1999년 현재에서 출발해 1979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reverse chron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