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 그 한 발의 총성이 한 남자의 인생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은 주인공 김영호가 철길 위에서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그 절규가 만들어진 과정을 역순으로 펼쳐 보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첫 20분 동안 당황했습니다. 이야기가 거꾸로 흐른다는 걸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런데 그 당혹감이 오히려 이 영화가 의도한 감각이었다는 걸,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박하사탕 영화 속 시대적 배경 — 개인을 부수는 역사의 무게《박하사탕》의 이야기는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을 관통합니다. 영화는 1999년 현재에서 출발해 1979년 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순 서사(reverse chronology..
꿈을 포기하면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4년작 《꽃피는 봄이 오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민식이 《올드보이》 직후 선택한 차기작이라는 말에 처음엔 의아했는데, 보고 나서는 오히려 이쪽이 더 최민식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잔하지만 묵직하게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꽃피는 봄이 오면 영화 속 배경 — 꿈과 현실 사이, 이 남자의 자리영화 속 주인공 현우를 보면서 나의 고등학교 시절도 떠올랐다. 우리 학교에도 밴드부가 있었다. 나도 음악을 좋아했고 밴드부 활동을 해보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다. 악기를 배우고 활동하려면 비용도 필요했고, 나에게는 그 돈을 쉽게 마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하고 싶..
솔직히 말하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에 그냥 가볍게 볼 생각이었습니다. 코미디 판타지라는 장르 설명에 부담 없이 틀었는데,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수상한 그녀』는 70대 할머니가 20대로 돌아간다는 설정 뒤에 가족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젊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조용히 숨겨두고 있는 영화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습니다.수상한 그녀 속 사진관 앞의 할머니, 그리고 내가 본 사진첩영화의 배경은 단순합니다. 욕 잘하고, 며느리한테 잔소리 늘어놓고, 손주들한테는 아낌없이 퍼주는 전형적인 한국 할머니 오말순. 그런데 그녀가 우연히 들어간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고 나오면서 갑자기 20대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이른바 판타지적 장치(fant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