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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체

 

솔직히 저는 부산행 이후 연상호 감독 작품에 크게 기대를 안 걸고 있었습니다. 반도에서 받았던 실망이 꽤 컸거든요. 그래서 군체도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는데, 극장 문을 나설 때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최근에 본 영화 중 가장 재밌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극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 집단지성 설정이 만든 공포

영화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감염자들이 서로 몸을 이어 붙이며 정보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장면에서 돌비 사운드로 극장 전체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파묘에서 이름 없는 묘를 처음 발견하던 순간과 비슷한 소름을 느꼈습니다. 시각적인 충격보다 사운드가 먼저 등골을 건드리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 설정은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입니다. 집단지성이란 개별 개체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누적함으로써 개체 단독으로는 불가능한 수준의 판단과 행동을 집단 전체가 수행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군체에서는 감염자들이 점액질로 서로 연결되어 한 개체가 습득한 정보가 순식간에 집단 전체로 전파되는 방식으로 이 개념을 구현해 냈습니다.

제가 특히 흥미로웠던 장면은 두 가지였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좀비들이 생존자의 자세를 그대로 따라 하는 장면, 그리고 처음엔 네 발로 기어 다니던 감염자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두 발로 걷는 감염자를 처음 봤을 때, 직접 겪어보니 단순한 공포를 넘어서 어떤 불쾌한 경이감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저 존재들이 단순히 달려드는 괴물이 아니라 학습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름이었거든요.

이 설정은 GPT로 대표되는 대규모 언어 모델(LLM, Large Language Model)과도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대규모 언어 모델이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여 문맥을 파악하고 적절한 반응을 생성하는 인공지능 모델을 말하는데, 군체의 감염자들 역시 각 개체의 경험이 전체 군체에 즉시 반영되며 점점 정교해지는 방식이 이와 구조적으로 유사합니다. 연상호 감독이 인공지능이 인간의 소통 불완전함을 뛰어넘는 미래를 경고하고 싶었다는 의도가 이 설정 안에 정확히 담겨 있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극장에서 실제로 소름이 끼쳤던 장면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감염자들이 처음으로 직립보행을 시작하는 장면
  • 엘리베이터에서 생존자를 따라 자세를 모방하는 장면
  • 일식집 앞에서 좀비 무리가 뒤로 물러섰다가 일시에 돌진하는 장면
  • 앤트밀 발생 시 극장 바닥이 울리던 사운드
  • 천장에 매달려 있던 감염자가 갑작스럽게 내려오는 장면

특히 좀비들이 소통하는 순간의 사운드 디자인은, 대사 하나 없이 그냥 그 소리만으로 관객을 얼어붙게 만드는 수준이었습니다. 돌비 애트모스(Dolby Atmos) 사운드 포맷 덕분이기도 했는데, 돌비 애트모스란 소리를 입체적인 3D 공간으로 구현해 천장과 측면까지 음향을 배치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 기술이 감염자들의 업데이트 사운드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해 줬다고 느꼈습니다.

결말 해석 — 앤트밀과 군체가 던지는 진짜 질문

영화 후반부의 앤트밀(Antmill) 현상은 단순한 반전 장치가 아닙니다. 앤트밀이란 군대개미 집단에서 발생하는 이상 행동 패턴으로, 선발대가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다가 후발대를 자신의 앞 개체로 착각하여 무한 원형으로 계속 회전하다 결국 탈진사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각 개체가 독립적 판단 없이 앞 개체의 신호만을 추종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오류 발생 시 외부 개입이 없으면 스스로 멈추지 못합니다.

영화에서는 서영철의 지령과 충돌하는 정보가 군체 네트워크에 유입되면서 집단 전체가 이 앤트밀 루프에 빠지고, 서영철 스스로 군체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오류의 원인을 직접 제거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이 장면은 클라이맥스로서 꽤 영리하게 설계된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결말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서영철이 앤트밀 현상에 직접 휘말려 군체에 밟혀 죽는 결말이 영화의 설정과 더 자연스럽게 맞물렸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불에 타 죽는 마무리는 다소 평범하게 느껴졌습니다.

결말 해석과 관련하여 흥미로운 시각이 있습니다. 연상호 감독은 와이즈만 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개미와 인간의 장애물 미로 통과 실험을 직접 언급하며, 군체를 소수가 마음대로 통제하려 할 때 생기는 부작용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출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이 맥락에서 보면 영화는 단순히 좀비 액션이 아니라 집단과 개인의 관계, 소통 방식의 가치를 묻는 작품이 됩니다.

저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오히려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서영철이 이끄는 완벽히 통합된 군체는 갈수록 강해졌지만, 결정적인 순간 단일 노드(node, 즉 서영철 한 명)가 패닉에 빠지자 전체가 멈춰버렸습니다. 반면 서로 생각이 달라 끊임없이 충돌하던 생존자들은 그 불완전한 소통 속에서 각자의 판단을 모아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우리가 서로 생각이 달라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같은 생각이면 얼마나 효율적일까 바라곤 하는데, 그 바람이 결국 어떤 취약성을 만드는지를 이 영화가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뇌 과학적으로도 다양한 신경 회로망이 단일 경로보다 오류에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출처: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 군체의 이야기가 그 원리와 정확히 맞닿아 있었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이번 작품을 부산행, 군체, 반도 순으로 놓고 보면, 저는 군체가 부산행보다 재밌었습니다. 부산행이 인간 드라마에 집중했다면, 군체는 좀비라는 존재 자체를 다시 설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장르적 완성도가 더 높다고 느꼈습니다.

클리셰가 넘치고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캐릭터들이 역할을 마치면 빠르게 소비되는 구조도 아쉬웠습니다. 그럼에도 좀비 장르 팬이라면, 특히 돌비 상영관에서 볼 수 있다면 한 번은 직접 확인해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고, 생각하면 할수록 꺼내볼 이야기가 더 많은 영화였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cO3wiUvoI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