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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엄마는 나한테 관심 없잖아"라고 말하던 순간,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분명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어디서 나온 건지 한동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하이파이브》를 보고 난 뒤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초능력을 다룬 영화인데, 정작 제 마음에 남은 건 능력이 아니라 '사랑을 어떻게 전달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이파이브에서 초능력보다 낯선 것, 서로의 마음
《하이파이브》는 장기이식(organ transplant)을 소재로 합니다. 여기서 장기이식이란 기증자의 신체 기관을 다른 사람의 몸에 옮겨 이식하는 의료 행위를 말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에서 기증자의 능력까지 함께 전달된다는 설정을 씁니다.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은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갖게 되고, 폐를 이식받은 사람은 주변을 날려버릴 만한 폐활량을 얻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그냥 유쾌한 판타지 액션 영화겠거니 했습니다. 2남 1녀를 키우면서 이런 가벼운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완서 아버지는 딸이 심장이 멈출 뻔한 기억 때문에 태권도를 금지합니다. 딸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빼앗은 겁니다. 딸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서도 상처를 받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상처를 보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해왔던 일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 사랑하기 때문에 막았지만, 아이는 무시당한다고 느꼈을 수 있습니다
- 부모의 의도와 자녀의 수신이 다를 때 관계에 균열이 생깁니다
- 서로가 옳다고 믿을 때 갈등은 가장 해결하기 어렵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 방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아이의 일기장을 펼치게 됐습니다. 읽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는 제가 몰랐던 아이의 외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엄마는 항상 바빴다"는 문장이 있었고, "나만 빼고 다들 관심받는 것 같다"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분명 세 아이를 똑같이 사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부모가 '나는 공평하게 사랑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아이가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다'라고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애착 이론이란, 영국 정신분석가 존 볼비가 제시한 이론으로, 아이가 주 양육자와 형성하는 정서적 유대가 평생의 관계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모가 얼마나 '사랑했는가'보다 아이가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게 단순한 이론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했지만' 표현을 '못 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속에 가득했던 사랑이 말과 행동으로 나오지 않으면, 아이에게는 그냥 없는 것이 됩니다.
사랑표현이 어렵다는 것, 40대가 되어서야 알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하이파이브》 속 영춘이라는 빌런 캐릭터를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습니다. 그는 딸을 착취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믿습니다. 딸의 마음은 읽지 못하고 자기 욕망만 따릅니다.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그 구조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10대의 저는 특별해지고 싶었습니다. 20대의 저는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30대에는 관계를 지키느라 바빴고, 지금 40대가 되어서야 알게 됩니다. 사랑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라는 것을요.
정서 지능(EQ, Emotional Intelligence)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정서 지능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관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골먼이 대중화한 개념으로, IQ보다 삶의 만족도와 관계의 질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정서 지능이 높다고 해서 자동으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의 감정을 '읽는 것'과 '알아주는 것'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거리가 있습니다. 읽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이는 알 수 없습니다.
딸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아이가 "엄마는 오빠들한테만 신경 쓰는 것 같았어"라고 말했을 때, 저는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것보다 먼저 아이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말을 하는 데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을지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진짜 초능력은 곁에 있을 때 쓰는 것
영화 《하이파이브》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사실 선녀입니다. 자신에게 초능력이 없다고 내내 투덜거리던 인물인데,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여섯 명 중 가장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대단한 힘이 없어도, 팀을 묶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 가족의 구조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 안에서도 대단한 능력보다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더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위기 때 문제를 해결해 주는 사람보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더 중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공감 반응(Empathic Response)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가 감정을 드러낼 때 그 감정을 평가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고, 먼저 '그랬구나'라고 수용하는 반응 방식을 의미합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처음에는 정말 어색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돼?"가 먼저 나오고, "힘들었겠다"는 말은 나중에야 겨우 따라왔습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아이가 말을 꺼낼 때, 해결책을 찾기 전에 먼저 듣고 있습니다.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예전처럼 '엄마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를 먼저 꺼내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들은 언젠가 집을 떠납니다. 그때가 오면 지금 이 평범한 저녁이, 아무렇지 않게 같이 밥을 먹고 투닥거리는 이 시간이 가장 그리운 장면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지금 해야 한다고,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하이파이브 영화, 어느 연령대에 맞는 영화인가요?
A. 코믹 액션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10대부터 즐길 수 있지만, 저처럼 40대 부모가 봐도 생각할 거리가 꽤 많습니다. 가족 관계나 사랑 표현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오히려 더 와닿을 수 있습니다. 가볍게 시작해서 묵직하게 끝나는 영화입니다.
Q. 하이파이브 초능력 설정이 억지스럽지 않나요?
A. 처음에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다 보면 초능력 자체보다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설정의 개연성을 따지는 영화라기보다는, 그 설정 위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그리는 영화로 보면 훨씬 편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Q.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감정 표현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건가요?
A. 제 경험상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건, 우리 세대가 그렇게 배우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배웠고, 말로 꺼내는 건 오히려 쑥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행동보다 말을 더 명확하게 기억하기도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 있습니다.
Q. 자녀에게 공감 반응을 잘 하려면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저도 아직 잘 못 하지만,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아이가 말할 때 핸드폰을 내려놓고, 해결책을 찾기 전에 "그랬구나" 한마디를 먼저 꺼내는 것입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아이가 말을 꺼낼 때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처음에는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결론
《하이파이브》는 초능력 영화지만, 제게는 가족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아이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별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뭐 먹었어?" 한 마디였는데, 평소보다 답장이 빨리 왔습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데 특별한 타이밍은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시점입니다. 혹시 오늘 가족에게 마지막으로 "사랑한다"라고 말한 게 언제인지 기억이 잘 안 난다면, 이 영화를 함께 보는 것도 괜찮은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