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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직후 한국 코미디 영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관객 1,000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좀비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한참 동안 극장 로비에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웃다가 울었고, 울다가 또 웃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그래도 나는 내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좀비딸의 좀비 아포칼립스 속 아버지의 선택
《좀비딸》은 전 세계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기록한 네이버 웹툰 원작을 실사화한 작품입니다. 동물원 사육사로 일하는 평범한 아버지 정환이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세상에서 딸 수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입니다. 장르는 '좀비 아포칼립스(Zombie Apocalypse)'인데, 여기서 아포칼립스란 문명의 붕괴 수준에 이르는 대재앙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세상이 끝나가는 상황이라는 뜻이죠.
저는 좀비 장르를 그다지 즐겨 보지 않는 편입니다. 잔혹한 장면이 많고 이야기 구조가 비슷비슷하다는 인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직접 겪어보니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하는 장면보다 정환이 좀비가 된 딸 앞에서 감염자인 척 연기를 하며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이 훨씬 더 긴장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장면이 웃기면서도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들었습니다. 딸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좀비 흉내를 내야 하는 상황이라니, 영화적 설정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전혀 허구가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 그 무게에 대하여
저는 이제 40대의 엄마입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알아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어렸을 때는 건강하게 자라기만 바랐는데, 아이가 클수록 기대와 욕심이 함께 커지더라고요.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남들에게 인정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때 느낀 건, 내가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 순간 아이를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이끌려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영화 속 정환도 처음에는 딸 수아에게 연기의 세 가지 원칙, 즉 '흐름, 강약, 운더'를 가르치려 합니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죠. 하지만 좀비 사태가 터지고 수아가 변해버린 뒤, 정환의 바람은 단 하나로 줄어듭니다. 그냥 살아 있어 줘.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 심리적 전환은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으로도 설명됩니다. 애착 이론이란 인간이 특정 대상과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고, 그 유대가 위협받을 때 극도의 불안과 보호 본능이 활성화된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정환이 보여주는 행동, 즉 세상 모두가 수아를 위험하다고 할 때 홀로 그 편에 서는 선택은 바로 이 근원적 애착 본능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 아이가 힘들 때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무력감
- 세상의 시선과 내 아이에 대한 믿음 사이에서 흔들리는 감정
- 그래도 "네 편이야"라는 말 하나를 지키고 싶은 마음
제 경험상 이 세 가지는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한 번쯤 몸으로 겪는 감각입니다. 그래서 정환의 선택이 마음에 깊이 박혔습니다.
코미디와 가족 드라마 사이, 영화가 남긴 아쉬움
《좀비딸》의 가장 큰 강점은 무거운 소재를 코미디 휴먼 드라마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조정석은 〈엑시트〉에서 942만 관객을 모은 흥행 배우로, 이번에도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끌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이정은, 조여정, 윤경호 등 탄탄한 배우진과 함께 만들어내는 앙상블은 원작 팬들의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경우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편에서 걸리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생존 윤리(Survival Ethics)'의 문제입니다. 생존 윤리란 재난 상황에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 전체의 안전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이 옳은가를 따지는 도덕적 논의를 말합니다. 영화 속 정환은 딸을 살리기 위해 좀비인 수아를 숨기고, 군 진압 부대의 눈을 피해 다닙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만, 수아가 다른 누군가를 물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 선택이 마냥 옳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웠습니다.
영화는 이 딜레마를 웃음과 감동으로 부드럽게 처리하는데, 그 덕분에 가족 단위 관객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문제를 충분히 들여다볼 시간을 관객에게 주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감염자는 즉시 사살한다'는 군의 명령과 '내 딸이니까 지킨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순간, 그 긴장감이 더 깊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습니다.
또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다'는 메시지가 너무 전면에 나오다 보니, 무조건적 사랑과 무분별한 감싸기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흐려지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부모의 진짜 사랑은 아이의 모든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때 "그건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이기도 합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재난 장르 영화에서 가족 서사는 관객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로 분석되지만, 그만큼 윤리적 갈등 묘사가 표면적으로 처리될 위험도 함께 지적됩니다.
지키는 사랑과 놓아주는 사랑 사이
영화 후반부에서 정환은 수아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훈련을 시작합니다. 수아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주고, 기억 자극을 통해 바이러스 진행을 늦추려 합니다. 이 설정에서 쓰이는 개념이 '기억 회복 자극(Memory Retrieval Stimulation)'입니다. 쉽게 말해 감각적 경험, 즉 음악이나 냄새, 익숙한 공간 같은 것들이 기억과 연결된 신경 회로를 다시 활성화할 수 있다는 원리입니다. 출처: 세계보건기구(WHO)의 치매 관련 연구에서도 음악 자극이 장기 기억 활성화에 효과적이라는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다른 각도로 생각이 뻗었습니다. 아이를 지킨다는 것이 반드시 아이 곁에 붙어 있는 것만은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아이의 기억 속에 '돌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 그게 어쩌면 더 오래가는 보호막일지도 모르겠다고요.
40대가 되어 보니 아이들이 이미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조금 더 천천히 크길 바랐는데, 어느 날 보니 이미 저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니 이제 저에게 필요한 것은 아이 앞에서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올 수 있는 사람으로 뒤에 서 있는 것인 듯합니다.
그래서 《좀비딸》은 저에게 단순한 좀비 영화가 아닙니다. '지키는 사랑'과 '믿고 기다리는 사랑'이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준 영화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좀비딸, 원작 웹툰을 안 봐도 영화를 즐길 수 있나요?
A. 저는 원작 웹툰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봤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영화 자체가 독립적인 서사 구조를 갖추고 있어서 사전 지식 없이도 인물 관계나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따라집니다. 오히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Q. 좀비 장르를 무서워하는 편인데 이 영화도 무섭나요?
A.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공포 영화보다 코미디 가족 영화에 훨씬 가깝습니다.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들이 있지만 분위기가 긴박하기보다 웃음을 유발하는 방향으로 처리된 경우가 많습니다. 자극적인 고어(Gore) 장면, 즉 혈흔이 강하게 표현되는 장면도 과하지 않아서 좀비 장르를 즐기지 못했던 저도 편안하게 끝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Q. 영화 속 아이들이 봐도 괜찮은 수위인가요?
A. 공식 상영 등급과 개인 판단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족 단위 관람을 염두에 두고 제작된 것이 느껴집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라면 내용을 충분히 따라가고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제 개인적인 인상입니다.
Q. 조정석 말고 다른 배우들 비중은 어떻게 되나요?
A. 이정은, 조여정, 윤경호, 최리 등 조연 배우들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특히 할머니 역 이정은과 동네 친구 역 윤경호가 만들어내는 장면들은 영화의 웃음 포인트 상당 부분을 담당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주연과 조연의 케미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흡인력 중 하나였습니다.
결론
《좀비딸》은 한국 코미디 영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속도로 관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단순히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힘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제가 직접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은, 이 영화가 건드리는 감정이 좀비라는 설정을 걷어내도 여전히 진짜라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혹은 부모에게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이야기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무더운 여름, 극장 의자에 앉아 한 번쯤 "나는 어떤 부모인가, 혹은 어떤 부모를 가졌는가"를 조용히 떠올려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생존 윤리의 딜레마를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경험하고 싶은 분들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