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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다문화 가구 수는 2023년 기준 약 40만 가구를 넘어섰습니다(출처: 통계청).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놀랐습니다. 그런데 영화 《완득이》를 보고 나서는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불편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저는 과연 그 40만 가구를 '다른 가족'으로 먼저 바라보고 있지 않았을까요?
완득이 속 편견은 악의 없이도 작동한다
《완득이》가 건드리는 핵심 중 하나는 이른바 '무의식적 편견(Unconscious Bias)'입니다. 여기서 무의식적 편견이란 악의나 차별 의도 없이도 특정 집단을 자동으로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인지적 습관을 말합니다. 뇌과학적으로는 정보 처리 속도를 높이기 위한 휴리스틱(heuristic), 즉 판단 지름길이 편견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제가 직접 돌아봤는데,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말투, 옷차림, 직업을 순식간에 훑고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결론'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편견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습니다. 그냥 '눈치 빠른 것'이라고 여겼을 뿐입니다.
영화에서 완득이의 아버지는 지체장애가 있고, 어머니는 필리핀 이주여성입니다. 동네 사람들의 시선에는 딱히 악의가 없습니다. 그냥 '불쌍하다', '힘들겠다'는 감상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 '불쌍하다'는 시선이야말로 상대를 온전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또 다른 편견이라는 점에서, 완득이의 표정이 왜 그렇게 굳어 있는지 비로소 납득이 됐습니다.
특히 이주여성이 겪는 사회적 배제는 단순한 개인감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출처: 여성가족부의 다문화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의 상당수가 한국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으로 '외로움과 고립감'을 꼽습니다. 영화가 완득이 어머니의 긴 부재를 다소 빠르게 봉합하는 장면에서는 솔직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 이면에 얼마나 긴 고립의 시간이 있었는지를 조금 더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무의식적 편견은 악의 없이도 작동하며, 동정과 배려도 편견의 형태가 될 수 있습니다
- 다문화 가정에 대한 '다르다'는 시선 자체가 사회적 고립을 강화하는 구조적 문제와 연결됩니다
- 영화는 이 문제를 따뜻하게 풀어내지만, 현실의 무게를 충분히 담아내지는 못했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가족 콤플렉스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완득이가 자신의 가족을 부끄러워하는 장면은 제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단순히 가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 경제적으로 어려웠을 때 정작 가장 힘들었던 것은 결핍 자체가 아니라, 그 사실이 드러날까 봐 늘 긴장하던 감각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대화가 어느 순간 저에게는 조심해야 할 지뢰밭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정체성 위협(Social Identity Threat)'이라고 부릅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받는다고 느낄 때 개인의 자존감과 정체성이 훼손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가족의 모습이 세상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느낄수록 아이는 가족이 아닌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완득이가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엄마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신과 뿌리를 부정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과정이었습니다. 40대가 된 지금 돌아보면, 그때 제가 부끄러워했던 환경은 저의 잘못도 아니었고 가족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그것이 저를 만든 삶의 재료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청소년에게 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완득이의 이야기가 단지 '특수한 가정환경'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족 때문에 위축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든 간에 완득이의 굳은 표정이 남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역할, 해결사가 아닌 안전기지
부모가 된 뒤로 이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동주 선생님을 처음 볼 때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렇게 거칠고 무례한 어른이 왜 주인공 곁에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동주야말로 완득이에게 진짜 필요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안전기지(Secure Base)'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안전기지란 아이가 세상을 탐색하다가 넘어지거나 두려울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고 느끼는 존재 혹은 관계를 말합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의 핵심 개념으로, 존 볼비(John Bowlby)가 정립한 이 이론에 따르면 아이의 자율성과 회복탄력성은 '해결해 주는 어른'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어른'으로부터 자란다고 합니다.
동주 선생님은 완득이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않습니다. 잔소리하고 귀찮게 굴지만,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부모 입장이 되고 보니,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실감합니다. 아이가 힘들어하면 제가 살아온 경험을 꺼내 들고 '이 길이 더 빠르다'라고 앞서서 정해주고 싶어 집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이의 선택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지 자꾸 되돌아보게 됩니다.
영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짚자면, 동주 선생님 한 명의 헌신이 너무 많은 것을 해결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현실에서는 개인의 관심만으로 구조적 빈곤이나 다문화 가정의 사회적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습니다. 완득이 같은 아이들에게는 동주 같은 어른뿐 아니라 제도적·사회적 지원 체계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 점에서 영화는 현실보다 조금 더 따뜻한 판타지에 가깝다는 생각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완득이는 청소년만 보는 영화인가요?
A. 제 경험상 오히려 40대 부모에게 더 많은 것을 묻는 영화였습니다. 청소년에게는 자기 정체성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부모 세대에게는 '나는 아이에게 어떤 어른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어느 연령대든 자기 삶과 겹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Q. 다문화 가정 문제를 영화에서 충분히 다뤘나요?
A. 따뜻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점은 분명한 장점입니다. 다만 이주여성이 실제로 겪는 고립과 차별, 오랜 부재의 이유에 대해서는 충분히 파고들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통계청이나 여성가족부 자료를 찾아보면 현실의 무게를 더 실감할 수 있습니다.
Q. 동주 선생님 같은 어른이 현실에도 있을까요?
A. 살아오면서 제 곁에도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귀찮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버텼던 것 같습니다. 다만 그 한 명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영화적 설정에 가깝고, 현실에서는 제도적 지원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무의식적 편견은 어떻게 줄일 수 있나요?
A.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지 의식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제가 직접 해봤을 때, '내가 지금 이 사람을 어떤 프레임으로 보고 있지?'라고 한 박자 멈추는 것만으로도 반응이 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완득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삶의 맥락을 담은 이야기를 자주 접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론
《완득이》를 청소년 성장 영화로만 분류하는 것은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가 진짜로 물어보는 것은 '완득이가 어떻게 자랐는가'가 아니라 '나는 완득이 같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편견 없다고 믿어온 시선에 얼마나 많은 전제가 깔려 있었는지를 다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부모가 된 지금은 특히 안전기지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마음에 남습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어른은 모든 길을 대신 정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돌아올 수 있는 곳이 되어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