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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영화 리뷰 (귀향의 의미, 놀란 각색, 세이렌 장면)

파코니 2026. 8. 31. 08:26

목차


    영화 오디세이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놀란이 고전 서사시를 굳이 왜 찍나' 싶었습니다. 인터스텔라나 오펜하이머 같은 작품을 만들던 감독이 2,700년 된 이야기로 돌아간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보고 나서, 제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건 그냥 신화를 옮겨 놓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오디세이 속 귀향이란 무엇인가 — 일반적 믿음과 실제 영화의 차이

    일반적으로 '귀향'이라고 하면 고향 땅을 다시 밟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원전 오디세이아를 조금 찾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리스어에서 귀향을 뜻하는 '노스토스(nostos)'와 고통을 뜻하는 '알고스(algos)'를 합치면 '노스탤지어(nostalgia)'가 됩니다. 쉽게 말해, 귀향이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부터 아픔과 하나로 묶여 있다는 뜻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마냥 기쁜 여정이 아니라는 걸, 이 오래된 언어가 이미 담고 있었던 거죠.

    영화에서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도착했을 때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스무 해가 지나 너무 변해버렸으니까요. 그 순간 저는 세 아이를 키우면서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예전의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없다는 감각. 이름이 불리지 않는 느낌. 영화 속 늙은 개 아르고스가 20년을 기다리다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고 눈을 감는 장면이 그래서 더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귀향은 도착으로 완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이 영화에서 본 귀향은 달랐습니다. 나를 알아봐 주는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그때 비로소 귀향이 완성된다는 것. 그 차이가 생각보다 크게 다가왔습니다.

    요약: 귀향은 장소로의 복귀가 아니라 나를 알아봐 주는 존재와의 재회로 완성되며, 오디세이는 그 아픔의 여정을 정면으로 그린다.

     

    놀란의 각색 — 낭만을 걷어내고 죄책감을 심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스스로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필모그래피 전체, 메멘토부터 인터스텔라까지가 결국 오디세이아의 변주였다는 것을요. 처음 들었을 때는 과장처럼 들렸는데, 생각해 보면 정확한 자기 진단입니다. 기억을 잃은 채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남자, 현실과 꿈 사이에서 아이에게 돌아가려는 남자, 시간을 도둑맞으면서도 딸 곁으로 가려는 남자. 이 세 인물은 칼립소의 섬에 7년 동안 붙들려 있던 오디세우스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한 각색 포인트는 '낭만의 제거'입니다.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라는 서사 기법이 있습니다. 라틴어로 '사건의 한복판'을 뜻하는데,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이야기의 거의 끝에서 시작하고 주인공의 모험을 회상 형식으로 전달했던 방식이 바로 이 기법의 원조입니다. 놀란은 이 구조를 현대 영화로 충실히 옮겼고, 시간 비선형 구성으로 원전의 형식을 살렸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인상적이었던 건 그가 지워버린 것들이었습니다. 트로이 목마, 서양 전쟁사에서 가장 낭만적인 계략으로 불리는 그 장면을 놀란은 목마 뱃속으로 카메라를 끌고 들어갑니다. 안은 지옥이었습니다. 며칠을 갇혀 오물이 가득한 공간, 바닷물에 반쯤 잠겨 아래칸 병사들 일부는 손도 써보지 못하고 익사합니다. 호메로스에도 베르길리우스에도 없는 장면입니다. 신화가 영광으로 포장해 온 것을 놀란은 폭력으로 되돌려 놓은 겁니다.

    트로이가 함락되던 밤, 오디세우스가 저지른 학살의 순간 아테나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환상 장면도 그렇습니다. 승리의 밤에 저지른 신성모독, 그 죄책감이 이후 모든 고난의 원죄가 됩니다. 오펜하이머가 프로메테우스처럼 불을 훔친 대가를 치렀다면, 이 영화의 오디세우스는 신의 목을 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죠. 제가 이 설계를 꽤 오래 생각했습니다.

    • 인메디아스 레스: 이야기의 결말 직전에서 시작하는 서사 기법으로, 오디세이아가 서양 문학 최초 사례
    • 비선형 구성: 시간 순서를 해체해 회상과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 원전의 형식을 현대 영화로 구현
    • 낭만 제거: 신화가 영광으로 기려온 대목들을 의도적으로 폭력과 죄책감으로 대체
    • 원죄 설계: 트로이 함락 당일의 학살이 이후 모든 고난의 출발점이 됨
    요약: 놀란은 신화의 낭만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죄책감을 심었으며, 이것이 오디세이아를 가장 정직하게 각색한 방식이라 볼 수 있다.

     

    세이렌 장면이 제게 남긴 것 — 경험으로 검증한 메시지

    일반적으로 세이렌 이야기는 '유혹을 이겨낸 지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귀에 밀랍을 막고 지나가거나, 몸을 묶어 안전하게 통과하는 선택. 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란의 카메라가 포착한 것은 전혀 달랐습니다. 세이렌의 노래는 영화 내내 한 번도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멜로디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대신 보이는 건 오디세우스의 얼굴뿐입니다. 그 아름답다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는 울고, 소리치고, 괴로워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저 노래는 자신이 지키지 못한 약속들의 노래라고.

    세이렌의 노래는 유혹의 노래가 아니라 고문의 노래였던 겁니다. 그것이 놀란이 선택한 해석이었고, 저는 이 부분에서 꽤 오래 멈췄습니다. 제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이 있었거든요.

    저는 오랫동안 '아직 목적지를 찾지 못한 사람'으로 살아왔습니다. 어릴 때부터 소심하고 조심성이 많아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섰고, 결국 선택하지 못하고 지나친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가정형편이라는 현실, 능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 그 시절의 선택들을 돌아볼 때마다 조금 아팠는데, 세이렌 장면을 보면서 그 감각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라는 표현이 생각보다 크게 박혔습니다.

    놀란이 세이렌의 노래를 직접 들려주지 않은 선택, 제 경험상 이건 탁월한 판단이었습니다. 어떤 음악을 써도 실망했을 겁니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은 표현하지 않고 반응만 보여준 것, 이것이 각색이라는 행위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호메로스 원전에 대한 연구를 집약한 자료(출처: Project Gutenberg — Homer's Odyssey)를 살펴봐도, 세이렌 에피소드는 원전에서조차 그 노래의 내용보다 오디세우스의 반응에 더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놀란은 그 방향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음악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이 영화는 오케스트라를 쓰지 않았습니다. 검과 갑옷이 나오는 사극에 관현악이 껌처럼 달라붙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는데, 놀란은 그 관습을 거부했습니다. 대신 고대 악기 아울로스(aulos)와 리라(lyra)를 복원해 소리로 채웠습니다. 아울로스란 고대 그리스의 관악기로 오보에와 유사한 형태이고, 리라는 현을 퉁겨 소리를 내는 고대 발현악기입니다. 오디세우스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리라 소리가 겹쳐지는 장면, 이건 원전에 "가인이 리라의 새 현을 거는 솜씨와 같다"라고 묘사된 문장을 소리로 문자 그대로 옮긴 겁니다. 3,000년 전의 비유를 음향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장면 하나로 영화 전체의 설계가 얼마나 정밀한지 짐작이 됐습니다. 고대 그리스 문학과 음악에 관한 학술 자료(출처: Perseus Digital Library — Tufts University)에서도 오디세이아 원전의 음악적 맥락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약: 세이렌의 노래를 들려주지 않고 반응만 보여준 선택, 그리고 고대 악기 소리로 채운 음향 설계가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하고 정밀한 각색이다.

     

    자주 묻는 질문

    Q. 오디세이 영화 원작과 많이 다른가요?

    A. 핵심 사건의 뼈대는 원전을 따르지만 놀란이 의도적으로 지운 장면들이 있습니다. 폴리페모스와의 언어 유희, 저승에서 아킬레우스를 만나는 장면 등이 빠졌고, 트로이 목마 내부를 보여주는 등 원전에 없는 장면이 추가됐습니다. 낭만을 걷어내고 폭력과 죄책감을 남기는 방향으로 각색됐다고 보면 됩니다.

     

    Q. 세이렌 장면에서 왜 노래가 안 들리나요?

    A. 놀란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연출입니다. 어떤 음악을 써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소리 대신 오디세우스의 반응과 표정만으로 세이렌을 그렸습니다. 표현이 불가능한 것은 표현하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제 경험상 이 선택이 오히려 상상력을 더 강하게 자극했습니다.

     

    Q. 크레딧에서 맷 데이먼 대신 트래비스 스콧이 맨 위에 나오는 이유가 뭔가요?

    A. 이 영화의 크레딧은 출연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어서입니다. 영화의 첫 목소리가 음유시인 역할의 트래비스 스콧이기 때문에 그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놀란이 오디세이아가 원래 입으로 전해지던 구전 서사시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래퍼를 음유시인으로 캐스팅했고, 왕보다 이야기꾼이 먼저 호명되는 구조로 영화의 주제를 크레딧에서도 관철시킨 겁니다.

     

    Q. 폴리페모스 장면이 CG인가요?

    A. 놀란은 실제 동굴 세트 안에 10미터가 넘는 인형(실물 프롭)을 제작해 촬영했습니다. 디지털보다 물리적 실체를 선호하는 놀란 특유의 연출 방식으로, 덕분에 판타지 크리처가 아닌 '이게 현실에 존재한다면' 싶은 공포감이 화면에 살아 있었습니다.

     

    결론

    오디세이는 걸작입니다. 저는 이 말을 쉽게 쓰지 않는 편인데, 이 영화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고전 각색 영화는 원작의 영광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영광을 재현하려 할수록 오히려 원작의 무게를 못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놀란은 반대로 갔습니다. 낭만을 지우고 폭력을 직시하고 죄책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단테가 700년 동안 풀지 못했던 질문, '오디세우스는 결국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놀란만의 답을 냈습니다. 왕좌를 내려놓고 페넬로페와 함께 떠나는 결말, 돌아온 뒤에 다시 떠나는 이야기. 저는 이것이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에 대한 가장 성숙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세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아직 제 목적지를 모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목적지를 모른다는 것이 여행이 없다는 뜻은 아니라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나만의 오디세이를 걷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요.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가능하면 큰 스크린으로 보시길 권합니다. 그 화면의 무게가 글로는 다 전달이 안 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X-Ng9NmEy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