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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영화 〈넌센스〉를 처음 틀었을 때 보험금 사기 미스터리 정도로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도 "모든 것이 진짜이면서 동시에 가짜일 수 있고,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이라는 취지의 대사가 며칠째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더군요. 그 말이 영화 바깥의 제 일상과 겹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넌센스 속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 이야기를 꺼낸 남자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새벽 저수지에서 시신 한 구가 발견되고, 손해사정사 유나가 보험금 지급 여부를 조사하러 나섭니다. 여기서 손해사정사란 보험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고 내용과 손해액 등을 조사해 보험금 산정에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보험사고를 둘러싼 사실관계를 살펴보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처음부터 이상한 지점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따라간 바로는, 고인의 보험금 수익자가 가족이 아니라 겨우 넉 달 전에 알게 된 낯선 남자 순규라는 점입니다. 더 묘한 건 치료를 중단했던 고인의 상태가 그 넉 달 동안 오히려 나아졌다는 기록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설정이 단순한 범죄 플롯이 아니라는 느낌을 초반부터 받았습니다. 사건 자체보다 순규라는 인물이 유나에게 다가가는 방식이 훨씬 더 신경 쓰였거든요. 그는 유나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짚어냅니다. 유나가 직접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영화는 순규를 사람의 말과 표정,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는 인물처럼 그립니다. 그래서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정말 상대를 잘 이해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바로 그 모호함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위로였을까, 휘두름이었을까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순규가 야구부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괴롭힘을 겪는 학생에게 배트를 꺼내 들게 하고, 억눌린 감정을 강하게 끌어내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갑니다. 저는 이 장면을 현실에서 쓰이는 방법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순규라는 인물의 독특하고 불안한 방식을 보여주는 영화적 연출로 보게 됐습니다.
순규가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저는 불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상처를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까지는 뛰어난 관찰력이나 공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처를 건드린 뒤 상대가 자신에게만 기대도록 흘러간다면, 저는 그것을 편안한 도움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순규를 단순한 악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거기에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유나가 순규와의 대화를 통해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처음으로 꺼내고, 표정이 밝아지는 변화는 분명 스크린 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순규의 행동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더라도, 유나가 그 순간 느낀 위로나 변화까지 모두 거짓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나옵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행동과 상대를 움직이려는 행동은 겉에서 보면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심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차이를 "상대에게 어떤 선택권을 남겨두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진심으로 돕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남겨둘 수 있지만, 상대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이끌어가려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위로: 상대가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볼 수 있다
- 휘두름: 상대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 둘의 겉모습: 경청, 공감, 날카로운 통찰처럼 보이는 행동만으로는 쉽게 구별하기 어렵다
이 구분은 어디까지나 영화를 보고 난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순규의 행동을 어떤 진단이나 기법으로 이름 붙이기보다는, 영화가 보여주는 관계의 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순규가 사람들의 상처를 건드리고 그들의 믿음을 흔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에게 그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묻습니다. 영화가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엄마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라는 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솔직히 좀 뜨끔했습니다. 순규의 행동을 보며 "저 사람 문제네"가 아니라 "나도 비슷한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저는 큰아이에게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가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학원 선택부터 친구 관계, 수면 시간까지 일일이 묻고 챙기고 조언했습니다. 제 마음은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는 내 말은 안 듣고 엄마 생각만 말하잖아." 그 순간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말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제게 그것은 사랑이었지만, 아이에게는 자기 생각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이었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진짜라는 사실과 상대가 다르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은 서로를 지우지 않습니다. 둘 다 동시에 진짜일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힘든 시기에 저는 아이들 앞에서 늘 웃으며 말했습니다. "엄마 괜찮아." 아이들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미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말수가 줄어든 제 모습, 눈치를 살피는 행동들.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제 모습에서는 다른 분위기를 느꼈던 것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통해 말로 전하는 마음과 실제로 상대에게 전해지는 마음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말과 표정, 행동이 서로 다르게 보일 때 상대방은 그 차이를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제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제 모습까지 함께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한 번은 마음을 '주었고', 한 번은 마음을 '숨겼습니다'. 두 번 모두 제가 의도한 것과 다른 것이 전해졌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이건 꽤 오랫동안 알아채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상대가 내 뜻과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규가 섬뜩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그가 사람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인물이었다면 오히려 쉽게 경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속 순규는 상대의 마음을 매우 세심하게 살피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 능력이 어떤 방향을 향하느냐에 따라 위로처럼 보이기도 하고, 상대를 움직이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넌센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나요?
A. 영화 〈넌센스〉는 2025년 11월 26일 극장 개봉한 작품으로, 이후 넷플릭스를 통해서도 공개됐습니다. 다만 OTT 서비스 여부는 시기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넷플릭스 앱에서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Q. 순규 역을 맡은 배우가 누구예요?
A. 웃음치료사 순규 역은 박용우 배우가 맡았습니다. 순규는 영화에서 사망자의 보험금 수익자로 등장하면서 유나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인물입니다. 제가 보기에 박용우 배우는 이 인물을 다정함과 서늘함이 함께 느껴지는 모습으로 표현해 영화의 긴장감을 이끌어 갑니다.
Q. 진심으로 돕는 것과 상대를 휘두르는 것, 어떻게 구분하나요?
A. 말의 내용만으로는 쉽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영화 속 순규를 보면서 "상대에게 어떤 선택권을 남겨두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진심으로 돕는 관계라면 상대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스스로 결정할 여지를 존중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상대의 약한 부분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려 한다면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영화 속 인물을 바라본 저의 개인적인 해석일 뿐, 전문적인 판단 기준은 아닙니다.
Q. 영화가 특정 종교나 단체를 다루나요?
A. 특정 종교나 단체를 소재로 삼은 영화는 아닙니다. 다만 순규가 사람들의 감정을 끌어내고 믿음을 흔드는 모습 때문에 관객마다 다양한 장면을 떠올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자체는 웃음치료사 순규와 손해사정사 유나의 관계를 중심으로 믿음과 의심의 경계를 다루는 스릴러에 가깝습니다.
Q. 결말이 열린 결말인가요?
A. 스포일러를 피해 말씀드리면, 순규가 정말 사람들을 돕는 인물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를 가진 인물인지에 대해 관객이 여러 가지로 생각할 여지를 남깁니다. 명확한 답을 원하는 분들에게는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그 모호함이 오히려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이라고 봅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순규의 말과 행동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결론
〈넌센스〉를 보고 나서 저는 '마음'이라는 단어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내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과 그 마음이 상대에게 제대로 닿았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좋은 뜻은 시작일 뿐, 그 뜻이 상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전해졌는지 살피고, 필요하다면 다시 말하고, 상대의 반응을 듣는 데까지 가야 마음을 제대로 쓴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순규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보다, 제 스스로가 관계 안에서 상대에게 선택권을 충분히 남겨두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이 영화를 더 잘 즐기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에 결론 내리기 어려운 영화인 만큼, 보고 나서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시는 걸 권합니다. 생각보다 대화가 길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