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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본색 (홍콩 누아르, 주윤발, 그 시절이 그리운 건)

파코니 2026. 8. 4. 20:01

목차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비디오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돌려봤던 영화가 있었는데, 바로 영웅 본색이었습니다. 성냥개비 하나를 입에 물고 걸어 나오는 그 장면 하나에 온 동네 남자애들이 다 따라 했죠. 지금 다시 꺼내보면 눈물이 먼저 납니다. 영화 때문인지, 그 시절 때문인지, 이제는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영웅 본색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시작된 홍콩 누아르의 세계

    혹시 동네 비디오 대여점 기억하십니까?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 그 조그만 가게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홍콩 영화 테이프들 말입니다. 저는 그 앞에서 매주 어떤 걸 빌릴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영웅 본색, 영웅 호환, 첩혈쌍웅, 첩혈가두, 천장지구... 지금 나열하다 보니 그 시절 제가 얼마나 홍콩 영화에 빠져 살았는지 새삼 실감이 납니다.

    홍콩 누아르(Hong Kong Noir)란 1980년대 홍콩에서 꽃 핀 범죄 액션 영화 장르로, 의리·배신·복수를 주축으로 한 남성 중심 서사와 양식화된 총격 액션이 결합된 것이 특징입니다. 쉽게 말해 총과 눈물이 함께 흐르는 영화입니다. 이 장르를 세계에 알린 결정적인 작품이 바로 1986년 오우삼(吳宇森) 감독의 영웅 본색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영웅 본색이 원래 주윤발 중심의 영화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는 적룡과 장국영이 연기한 형제의 우애를 담은 이야기였고, 주윤발이 맡은 마크는 그저 친구 역할의 조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촬영이 진행될수록 오우삼 감독의 눈에 주윤발이 남달라 보였고, 결국 그의 비중이 계속 늘어났습니다. 나중에는 주윤발로 끝나는 영화가 되어버렸죠. 2편을 찍을 때는 1편에서 이미 사망한 마크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쌍둥이 형제가 있었다"라는 설정까지 만들어낼 정도였으니, 그 존재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지 않으십니까.

    • 영웅 본색 (1986) — 오우삼 감독, 홍콩 누아르의 교과서
    • 원작은 적룡·장국영의 형제 서사, 주윤발은 조연으로 출발
    • 촬영 도중 주윤발의 존재감으로 비중이 급격히 확대
    • 속편에서는 쌍둥이 형제 설정으로 주윤발 캐릭터 부활

    요약: 영웅 본색은 원래 형제 이야기였지만, 촬영 현장에서 주윤발의 카리스마가 영화 자체를 바꿔버린 전설적인 작품입니다.

    주윤발이 만든 것들 — 성냥개비와 슬로모션의 미학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이 눈에 밟힙니다. 주윤발이 바바리코트 깃을 세우고, 선글라스를 쓰고, 입에 성냥개비를 문 채 걸어 나오는 장면. 당시 저는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저게 멋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친구 중 한 명은 이 영화를 보고 해병대에 입대했다고 했는데, 주윤발처럼 멋지게 총을 쏘고 싶어다 거였답니다. 결과는 담배만 잔뜩 피우다 제대했다고 하더군요. 실내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걸 지금 다시 보면 세월이 새삼 느껴집니다.

    오우삼 감독의 액션 연출을 외국 평론가들은 '총알의 발레(Ballet of Bullets)'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총알의 발레란 고속촬영(슬로모션)과 정상 속도 편집을 교차하면서 총격 장면에 뮤지컬적 리듬감을 부여하는 오우삼 특유의 스타일을 말합니다. 빠르게 달려드는 조폭들과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주윤발이 한 화면에서 충돌할 때, 그 순간이 두 개의 세계가 겹쳐지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납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처음 볼 때 그냥 "멋있다"고만 느꼈는데, 나중에 이 연출의 원리를 알고 나서 다시 봤을 때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 제가 지금 생각해도 감탄하는 부분은 탄창 관리입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무한 탄창식 연출이 아니라, 마크가 미리 곳곳에 여분의 총기를 숨겨두고 한 자루씩 꺼내며 적을 제압하는 방식입니다. 장전된 총알 수까지 감안해서 쏘는 이 디테일 하나가 영화 전체의 밀도를 확 높였다고 생각합니다. 화분 뒤에 숨겨둔 총, 허리춤에 두른 예비 권총... 그 설정 하나하나가 지금 봐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오우삼에 대해 "미켈란젤로는 천장에 그림을 그렸고, 오우삼 감독은 액션으로 영화를 만든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출처: IMDb). 저수지의 개들에 등장하는 멕시칸 스탠드오프 장면, 즉 총을 겨눈 사람들이 서로 째려보는 장면도 영웅본색 2편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약: 주윤발의 성냥개비 연기와 오우삼의 슬로모션 편집은 단순한 멋이 아니라, 지금도 세계 영화에 인용되는 치밀한 영화적 언어였습니다.

    그 시절이 그리운 건 영화 때문만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영웅 본색을 다시 볼 때마다 저는 영화 중간에 한 번씩 멈추게 됩니다. 장국영 형님 얼굴이 화면에 잡힐 때면 특히 그렇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그 얼굴을 보면 뭔가 찡해지는 게 있습니다. 주윤발도 그때는 한창 젊었고, 저도 어렸고, 이제 저도 50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영화에 흐르는 OST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웅 본색의 음악은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편곡 버전으로 삽입되어 있는데, 특히 마크가 혼자 복수에 나서는 장면에 깔리는 테마 음악은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이 음악들은 앨범으로 발매되어 홍콩은 물론 한국에서도 크게 히트했고, 지금도 홍콩 영화 음악 중 가장 사랑받는 곡으로 꼽힙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비디오 가게 형광등 불빛이 떠오릅니다.

    모터보트 유턴 장면은 제 개인 눈물 버튼입니다. 이게 설명이 되는 분들은 저와 같은 세대일 겁니다. 그 장면에서 뭔가 복받쳐 오르는 건, 아마 영화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그 시절 그 감성 자체를 다시는 느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홍콩 영화 산업의 전성기는 1980~90년대로, 당시 홍콩은 미국, 인도와 함께 세계 3대 영화 제작국으로 불렸습니다(출처: Hong Kong Filmart). 그 시절 비디오 대여점 한 벽면을 채웠던 수많은 홍콩 영화들은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지금의 50대가 청춘을 함께 보낸 일종의 문화적 원체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직, 친구, 형, 동생, 의리, 사랑... 그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었습니다.

    요약: 영웅 본색이 지금도 울컥하는 건 영화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그 시절 그 감성이 함께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웅 본색에서 주윤발이 원래 조연이었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영웅 본색은 원래 적룡과 장국영이 연기한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었고, 주윤발이 맡은 마크는 비중이 크지 않은 친구 역할이었습니다. 그러나 촬영 중 오우삼 감독의 눈에 주윤발이 너무 인상적으로 보여 비중이 계속 늘어났고, 결국 주윤발 중심으로 영화가 재편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영웅 본색은 현장에서 다시 써진 영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Q. 오우삼 감독의 슬로모션 액션이 왜 그렇게 유명한 건가요?

    A. 오우삼 감독은 고속촬영과 정상 속도 편집을 교차해 총격 장면에 뮤지컬적 리듬감을 부여하는 방식을 구사했습니다. 이를 외국에서는 '총알의 발레'라고 부릅니다. 단순히 총을 쏘는 게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동작이 한 편의 무용처럼 설계되어 있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같은 감독들이 공개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밝힐 만큼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연출 방식입니다. 이런 스타일이 할리우드에서도 비슷하게 나오는 걸 보셨다면, 뿌리를 찾아보면 대부분 오우삼으로 연결됩니다.

    Q. 영웅 본색 시리즈는 몇 편까지 있나요?

    A. 정 편 기준으로 1편(1986), 2편(1987), 3편(1989)이 있습니다. 1편과 2편은 오우삼 감독이 연출했고, 3편은 서극 감독이 맡았습니다. 2편의 경우 1편에서 사망한 마크를 다시 등장시키기 위해 쌍둥이 형제 설정을 추가했는데, 그만큼 주윤발의 캐릭터가 상업적으로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Q. 지금 영웅 본색을 처음 보면 재미있을까요?

    A. 저는 솔직히 처음 보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액션 씬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주윤발의 카리스마, 오우삼의 연출 감각, 그리고 남자들의 의리와 우정을 다루는 서사의 밀도는 지금 봐도 충분히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그 시절 비디오 대여점에서 느꼈던 그 두근거림은 처음 보는 분들에게는 전달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건 영화가 주는 게 아니라 추억이 주는 것이니까요.

    결론

    영웅 본색은 단순한 홍콩 누아르 장르의 흥행작이 아닙니다. 촬영 현장에서 배우 한 명의 존재감이 영화 자체를 뒤바꿨고, 그 결과로 탄생한 총알의 발레 스타일은 지금까지 세계 영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중2 때 처음 봤고, 50대가 된 지금도 가끔 꺼내봅니다. 볼 때마다 다른 게 보입니다. 어릴 땐 그냥 멋있어서 봤고, 지금은 뭔가 그리워서 봅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이미 보신 분들은 한 번 더 꺼내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화면 속 그 얼굴들, 그 음악, 그 성냥개비 하나가 지금의 저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게 또 새롭게 느껴지실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tEe3PjBGcTE&t=37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