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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고기 (독립영화, 노인빈곤, 무전취식)

eun80 2026. 7. 22. 11:03

목차


    독립영화를 보면서 "이건 나만 이렇게 생각 하는 건가?" 싶었던 적 있으신가요. 저는 <사람과 고기>를 보고 나서 딱 그 기분이었습니다. 노령 인구 문제를 다룬 영화라는 걸 알고 갔는데, 막상 보고 나니 그 안에 담긴 게 노인 문제만이 아니었거든요. 먹는다는 행위, 혼자 산다는 현실,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단순한 줄거리 속에 이것들이 겹겹이 쌓여 있어서 다 보고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독립영화가 정면으로 꺼낸 노인 빈곤의 실체

    사람과 고기는 양종현 감독이 연출하고 임나무 작가가 각본을 쓴 작품입니다. 박근영, 장용, 예수정 세 배우가 사실상 영화 전체를 삼등분해서 이끌어가는 구조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도 없고, 반전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독거노인(獨居老人)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독거노인이란 혼자 생활하는 노인을 뜻하는데, 2023년 기준 국내 독거노인 수는 약 213만 명에 달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장용 배우가 연기하는 우식이라는 인물은 폐지를 주워 하루를 연명하고, 슈퍼마켓에서 고기를 집었다가 결국 우유 한 팩만 사서 돌아옵니다. 고양이와 나눠 마시고 나서 자신도 한 모금 마시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제일 오래 남았습니다.

    노인 빈곤율(老人貧困率)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중위소득 50%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는 노인 비율을 의미하는데, 한국은 이 수치가 OECD 평균의 세 배를 넘습니다. 영화 속 세 노인이 폐지를 놓고 영역 다툼을 벌이는 장면이 그냥 코미디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드는 첫 번째 생각은 이게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인생 반환점을 어느 정도 돌아서서인지, "나는 저 나이가 되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따라붙었습니다.

    무전취식이라는 일탈, 그리고 되살아나는 인간의 욕망

    세 노인은 고깃집에서 고기를 시켜 먹고 돈을 내지 않고 사라지는 무전취식(無錢取食)을 반복합니다. 무전취식이란 말 그대로 돈 없이 음식을 먹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행위로, 명백한 경범죄에 해당합니다. 영화는 이걸 미화하지도, 강하게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보여줍니다.

    이 장면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시각이 갈릴 수 있습니다. 범죄는 범죄니까 잘못이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영화가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봤습니다. 고기 한 점을 먹으면서 이렇게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게, 과연 과도한 욕망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영화에서 세 노인이 고기를 먹는 장면을 감독은 익스트림 클로즈업(extreme close-up)으로 잡습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란 피사체의 일부를 화면 가득 채울 만큼 극단적으로 가까이 찍는 촬영 기법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입술, 눈, 손 같은 신체 일부가 화면 전체를 덮는 방식인데, 이 장면에서 그 선택은 의도적으로 읽힙니다. 노인들도 욕망한다는 것, 그 욕망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것을 클로즈업으로 정면으로 드러내는 겁니다.

    영화가 이 세 인물을 '착한 노인'으로 설정하지 않은 점도 저는 오히려 좋았습니다. 형준은 20년 넘게 자식들과 의절한 사람이고, 화진은 젊은 시절 첩살이를 했던 이력이 있습니다. 우식은 범죄 행각을 주도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분들도 존엄하게 살 권리가 있는가,라고 영화는 묻고 있습니다.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대답이 "그렇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세 인물이 공유하는 핵심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우식: 간암 말기 환자. 항암 치료 거부, 고기와 소주로 남은 시간을 채우기로 선택
    • 형준: 법적으로 아들 소유인 집에 홀로 거주. 폐지 수입과 정부 보조금으로 생계유지
    • 화진: 손자를 홀로 키우는 노점상 노인. 자신을 줄여가며 손자에게 돈을 쥐여줌

    극장 상영관이 없다는 것, 이게 진짜 문제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자체보다 영화를 보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경기도에 사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도 매불쇼에서 소개를 들은 후 예매 사이트를 뒤졌는데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screen monopoly)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대형 흥행작이 전체 상영관의 절대다수를 점유하여 다른 영화가 상영 기회 자체를 얻지 못하는 구조를 말합니다. 한국 영화산업에서 이 현상은 꽤 오래된 문제인데, 독립영화나 소규모 배급사 영화들은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스크린을 배정받지 못하면 존재 자체가 지워집니다.

    이걸 그냥 시장 논리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구조적 문제라고 볼 것인지는 의견이 갈립니다. 어차피 사람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게 맞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선택권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관객이 선택을 안 했다고 말하는 건 좀 무리가 있습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겁니다.

    배급(配給) 구조 문제도 여기에 연결됩니다. 배급이란 완성된 영화를 극장에 공급하여 관객과 연결하는 전 과정을 의미하는데, 자본력이 약한 독립영화는 배급 단계에서 이미 불리한 조건에 놓입니다. 사람과 고기처럼 입소문이 퍼질수록 "왜 극장이 없냐"는 반응이 나오는 건 이 구조 때문입니다.

    영화 속 화진의 대사가 여기서도 겹쳐 보입니다. "늙었으니까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가 죽으란 말이니." 독립영화에게도 비슷한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과 고기는 슬프고 유쾌하고, 그러면서 오래 생각나는 영화입니다. 제가 본 후 하루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건 이 영화가 특별히 자극적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현실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볼 기회가 생긴다면 OTT든 소규모 상영이든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생기는 경험이라는 표현이, 이 영화에는 딱 맞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JuZvex3V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