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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산행'을 다시 보았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무서운 좀비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달리는 열차 안에서 서로를 붙잡으려는 아빠와 딸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공포물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이기심과 연대,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를 묻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두 번째 관람에서야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부산행 속 좀비는 어떻게 하나의 장르가 됐을까
좀비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그 뿌리를 제대로 살펴본 것은 사실 최근의 일입니다. 좀비라는 개념은 카리브해에 있는 나라 아이티의 민속 신앙에서 출발했습니다. 본래는 주술사가 죽은 사람을 되살려 부리는 존재였으나, 서양 대중문화와 만나면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현대적인 좀비의 원형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작품이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입니다. 이 소설은 1954년에 출간되었으며, 병에 감염된 인간들이 무리를 지어 움직인다는 설정으로 이후 좀비물에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소설 속 존재는 좀비보다는 흡혈귀에 가깝게 묘사됩니다. 이후 조지 로메로 감독이 1968년에 연출한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에서 "사람을 물어 감염시키는 좀비"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로메로 감독은 좀비의 정체를 끝까지 설명하지 않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정의되지 않은 공포는 관객이 스스로 채워 넣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좀비는 특정 캐릭터가 아니라 하나의 장르적 문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좀비라는 존재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입니까? 여러 작품을 보며 느낀 점은, 좀비가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의 모습을 빌려 온다는 것입니다. 1960~70년대 좀비 영화에는 냉전과 사회 불안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 많고, 1978년 쇼핑몰을 배경으로 한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는 아무 생각 없이 소비만 하는 사회를 비판한 작품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좀비(Zombie), 쉽게 말해 의지와 이성을 잃고 본능만 남은 존재가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그 모습이 우리 자신을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좀비의 기원: 아이티 민속 신앙 → 리처드 매드슨(1954) → 조지 로메로(1968)로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 로메로의 방식: 좀비의 정체를 설명하지 않아 관객이 직접 공포를 완성하게 만들었습니다.
- 좀비의 상징: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됩니다. 냉전 불안, 소비 사회 비판, 전염병 공포, 사회 붕괴 등이 대표적입니다.
부산행이 담은 사회적 메시지
2016년에 개봉한 '부산행'은 KTX라는 공간을 무대로 선택했습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한 번쯤 타 보았을 익숙한 열차 안에 좀비를 들여놓은 것입니다. 좁고 긴 통로와 칸마다 나뉜 객실 구조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작은 사회를 만들어 냅니다. 각 칸을 지날 때마다 위기가 커지는 구조는 마치 게임의 단계를 하나씩 넘어가는 것처럼 긴장감을 쌓아 올립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주인공 석우의 직업입니다. 석우는 펀드매니저(Fund Manager), 즉 고객의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금융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번 사태가 시작된 바이오 기업에 석우의 회사가 관여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납니다.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던 사람이 사실은 그 이기심이 만든 재난의 일부였다는 설정은 꽤 날카로운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국민 여러분의 안전에는 이상이 없습니다"라는 방송 장면은 그저 극 중 대사로 넘기기 어려웠습니다. 2015년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전파되는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의 호흡기 감염병 사태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개봉한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관객들이 이 영화를 판타지가 아닌 현실의 연장선으로 받아들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기준으로 부산행은 국내 누적 관객 수 약 1,156만 명을 기록하며, 2016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습니다.
"좀비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에 저 역시 깊이 공감했습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좀비가 등장하는 장면보다 용석이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문 앞으로 밀어 넣는 장면이 훨씬 더 불쾌하고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좀비는 본능대로 움직이지만, 용석은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합니다. 바로 그 차이가 이 영화의 진짜 공포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이 대비가 너무 선명해서 인물이 다소 단순하게 느껴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 지적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초반부터 누가 착한 사람이고 누가 나쁜 사람인지 어느 정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석우가 변해 가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졌기 때문에 관객의 감정이 자연스럽게 따라간다고 판단합니다.
K좀비의 시작과 이 영화가 남긴 것
부산행 이후 한국 좀비 콘텐츠는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과 '지금 우리 학교는'이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으면서 'K좀비'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K좀비(K-Zombie)는 한국적인 정서와 사회적 배경을 담은 좀비 장르를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빠른 속도, 무리 지어 움직이는 장면의 연출, 그리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함께 갖추었다는 점에서 서구 좀비물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공개 당시 넷플릭스 공식 글로벌 TOP 10 순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부산행의 세계관을 넓혀 다른 작품들까지 함께 보았을 때의 감상도 남겨 둡니다.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은 부산행 바로 전날의 이야기이고, '반도'는 4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세 작품을 이어서 보면 부산행 한 편만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특히 '서울역'에서 재난을 가장 먼저 마주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가장 약한 곳에 있던 이들이라는 점이 묵직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감독이 방송에서 밝힌 이 영화의 핵심 질문인 "앞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물음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에 남았습니다. 수안이는 학교 발표회에서 아빠를 위해 노래를 준비했지만, 아빠는 그 자리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노래가 마지막 장면에서 수안이를 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석우가 딸에게 남긴 것은 돈도 지위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남을 위해 행동하는 태도'였고, 그 태도가 결국 딸의 목숨을 지켰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부산행 열차가 아닌 또 다른 기차를 떠올렸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여름, 설레는 마음으로 기차에 올라 할머니 댁으로 향했던 여행이 생각났습니다. 방학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집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동생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누나, 엄마 찾았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엄마를 만나러 갔습니다. 그래도 엄마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저희는 조금씩 다시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빠와 동생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석우가 수안이에게 남긴 것처럼, 제 형제들이 저에게 남겨 준 것도 결국 '먼저 손 내미는 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부산행에서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A. 영화 안에서 명확하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주인공 석우의 회사가 관여한 바이오 기업에서 사태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간접적으로 드러납니다. 이 설정은 개인의 욕심이 재난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영화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원인을 모호하게 남겨 둔 것은 조지 로메로 감독 이후 이어져 온 좀비 영화의 전통과도 닮아 있습니다.
Q. 부산행 좀비는 왜 그렇게 빠릅니까?
A. 제작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보조출연자가 좀비 움직임을 따로 훈련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 좀비물의 느린 움직임과 달리 '달리는 좀비'를 택했으며, 이는 K좀비를 대표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좀비 떼가 빠르게 몰려드는 장면은 훈련받은 배우들이 실제로 움직여 만든 장면이 많아 컴퓨터 그래픽과는 또 다른 현실감을 줍니다.
Q. 부산행과 서울역, 반도는 어떤 관계입니까?
A. 세 작품 모두 연상호 감독의 작품으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서울역'은 부산행 전날 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담았고, '반도'는 부산행으로부터 4년 뒤, 감염이 퍼진 한반도를 배경으로 합니다. 세 작품을 순서대로 보면 이 세계관이 얼마나 꼼꼼하게 짜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Q. 부산행이 신파라는 비판은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A. 결말 부분에서 감정을 길게 끌어올리는 방식이 다소 억지스럽다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수안이의 노래라는 복선이 영화 초반부터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이 근거 없는 감정 자극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므로 한쪽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결론
부산행을 다시 보고 나니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나라면 석우처럼 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용석처럼 행동할까?" 위기 상황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도 저는 종종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내 것만 챙기는 편이 쉽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습니다. 석우가 딸에게 남긴 것처럼, 그 태도 하나가 결국 누군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엄마에게 먼저 문자를 보냈습니다. "엄마, 밥은 드셨어요?" 그리고 오빠와 동생에게도 짧게 한마디를 보냈습니다. "고마워." 좀비 영화 한 편이 이런 마음을 만들어 낼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