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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두려움이 없어야 할까요? 《변호인》을 처음 봤을 때 저는 그 질문에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198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실제 역사 사건인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평범한 세금 전문 변호사가 국가권력에 맞서 변론을 펼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고, 결국 제 학창 시절 기억까지 끄집어내게 됐습니다.
변호인 속 원칙이 무너질 때, 사람은 무엇으로 버티는가
영화 속 송우석 변호사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사법고시를 독학으로 통과하고, 세금 절세 상담으로 돈을 버는 데 집중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맞서게 된 건 어떤 숭고한 소명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 자신을 먹여 살려준 국밥집 아주머니의 아들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하게 된 것이 바로 적법절차(due process) 원칙입니다. 적법절차란 국가가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헌법적 원칙입니다. 영화 속 부림사건에서는 이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영장도 없고, 변호인 접견권도 차단된 상태에서 폭력적인 취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막연하게 '법이 있으면 법대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법이 정의롭게 집행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또렷하게 인식했습니다. 법 조항이 제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의도에 따라 법은 억압의 도구로 뒤바뀔 수 있다는 것, 그게 가장 무서웠습니다.
국가보안법(National Security Act)은 당시 반국가적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법률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서울대 권장 도서이자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던 책들, 예컨대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나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불온서적으로 지목됩니다. 이 책들은 현재도 수능 준비생과 대학생의 필독서로 많이 읽히는 작품들입니다. 상위법인 국가보안법이 하위 출판 관련 법령을 무력화하는 구조, 즉 법 체계 자체의 왜곡이 가능했던 시대였습니다.
- 적법절차 원칙: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때는 반드시 법이 정한 절차를 따라야 함
- 변호인 접견권: 피의자가 구속된 상태에서 변호사를 만날 수 있는 헌법상 권리
- 국가보안법: 당시 반국가 행위 처벌 법률, 상위법으로서 하위 법령 억압 가능
인권은 뉴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저는 인권(human rights)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습니다. 인권이란 어떤 국제 협약이나 사회 운동에서 다루는 특수한 개념이라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인권이란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는 기본적 권리로, 어떤 권력이나 이념과도 무관하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영화는 그 당연한 사실을 조용하고 묵직하게 다시 일깨워 줬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것과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저는 혼자 있거나 소외되는 친구를 보면서도 먼저 다가가지 못한 기억이 있습니다. '괜히 나서면 나도 불편해질까 봐'라는 마음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직접 괴롭힌 건 아니지만, 알면서도 외면했다는 사실은 완전히 떳떳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속 부림사건의 실제 피해자들은 2009년에야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14년에는 국가배상 판결도 이뤄졌습니다(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사건이 일어난 지 30년이 넘어서야 법적 구제를 받은 것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침묵한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두려워서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영화가 보여주는 감동적인 결말 너머에 무거운 현실이 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제 아이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자녀도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 사실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이해하게 된 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습니다. 그래서 국밥집 아주머니가 아들을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용기는 두렵지 않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송우석 변호사가 법정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읽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조항은 국민주권 원리를 선언한 조문입니다. 국민주권 원리란 국가의 최고 권력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민 전체에 귀속된다는 헌법의 근본 원칙입니다. 제가 직접 봤을 때 법정 안에서 이 문장이 읽히는 순간, 심장이 조용히 쿵 내려앉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송 변호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엔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고, 주변의 불의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변한 것은 어떤 이념을 새로 갖게 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알던 사람이 부당하게 짓밟히는 것을 눈앞에서 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진짜 같았습니다.
한국 헌법재판소는 기본권 보장과 관련해 "국가권력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으며 이를 보호할 의무를 진다"는 원칙을 여러 결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해 왔습니다(출처: 헌법재판소). 그 원칙이 현실에서 얼마나 쉽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줍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쉽지만, 현실에서 가족과 직장과 인간관계를 생각하다 보면 침묵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히 옵니다. 저 역시 모든 불의에 용감하게 맞설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아무 잘못도 없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외면도 하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말하는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두렵더라도 해야 할 일을 선택하는 것, 바위에 달걀을 던지는 행위가 무의미해 보여도 달걀은 생명을 품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긴 가장 단단한 메시지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변호인》이 실제 사건을 다룬 건가요?
A. 네, 1981년 부산에서 실제로 일어난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합니다. 부림사건이란 전두환 군부 정권 시절 공안 당국이 학생과 사회인들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한 대표적인 조작 사건입니다. 피해자들은 2009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영화는 당시 이 사건을 변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경험에서 착안해 만들어졌습니다.
Q. 영화에서 불온서적으로 나오는 책들이 실제로 금지됐었나요?
A. 《역사란 무엇인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영화에 등장하는 책들은 당시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고 서울대 권장 도서로도 지정되었던 책들입니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의 적용 범위가 워낙 넓고 자의적으로 운용됐기 때문에 해석 여부에 따라 얼마든지 문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들은 지금도 학생들의 필독서로 널리 읽히고 있습니다.
Q. 《변호인》은 정치적 영화인가요, 아니면 누구나 볼 수 있는 영화인가요?
A. 특정 정치 성향을 지지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인권과 적법절차, 그리고 평범한 개인의 선택에 관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존 인물이 모티브이고 역사적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정치적 맥락을 완전히 분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부당한 일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입장에 있든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주제입니다.
Q.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결국 어떻게 됐나요?
A.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2009년 재심을 통해 헌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고, 2014년에는 국가배상 판결도 받았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당시 가해 측에 대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결론
《변호인》은 저에게 영웅이 되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자신의 양심 앞에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쌓여 세상의 방향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모든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 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을 보고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지나치는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먼저 바라보고, 들어주고, 필요하다면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 그 정도가 지금 제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약속입니다.
정의는 누군가의 거대한 희생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외면하지 않는 작은 선택들이 쌓이는 것, 그것도 정의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