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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 관객. 《베테랑》이 역대 박스오피스 8위에 이름을 올린 숫자입니다. 저는 처음 이 수치를 보고 "그래, 그럴 만하지"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더 오래 남은 건 조태오라는 인물이 건드린 어떤 불쾌한 감각이었는데, 그 감각이 이 영화를 단순한 오락물 이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베테랑 속 통쾌함 — 서도철이 안 주눅 드는 이유
영화 속 서도철 형사는 재벌 3세 조태오 앞에서도 전혀 기가 죽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그렇게 통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한참 생각해 봤습니다.
현실에서는 이른바 위계 권력(hierarchy power), 즉 돈·직위·배경으로 형성된 사회적 서열이 사람의 태도를 결정하는 경우가 꽤 많습니다. 여기서 위계 권력이란 개인의 능력이나 인격이 아닌 외부 자원에서 비롯된 힘을 말합니다. 서도철은 그 서열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조태오의 돈이 그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직접 느낀 건 이겁니다. 길거리나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막말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속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데 선뜻 나서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서도철이 "폭행 추가야, 여기 다 찍혔어 이 새끼야"라고 외칠 때 관객들이 그렇게 크게 웃고 손뼉 치는 건, 그 장면이 우리가 현실에서 참아왔던 말을 대신해 주기 때문일 겁니다.
류승완 감독은 이른바 카타르시스 서사(catharsis narrative), 즉 억압된 감정을 극적 장치를 통해 해소하는 이야기 구조를 정말 능숙하게 다룹니다. 쉽게 말해 관객이 현실에서 참아온 분노를 스크린 안에서 대리 경험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베테랑》이 13년이 지난 지금도 "역대급 오락 영화"로 꼽히는 건 그 구조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서도철의 핵심 매력: 위계 권력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
- 류승완 감독의 카타르시스 서사 구조가 관객의 공감을 끌어냄
- 황정민·유아인의 대립 연기가 이 구조를 완성시키는 축
갑질 — 조태오는 왜 그렇게 행동했나
조태오가 화물 기사 앞에서 맷돌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어이없네"라고 내뱉는 장면은 솔직히 보면서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그 장면이 무서운 건 폭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단 한순간도 상대를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권력 오용(power abuse)이라고 부릅니다. 권력 오용이란 자신의 지위나 자원을 이용해 타인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를 가리키며, 단순한 나쁜 성격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영화 속 신진그룹이 법무팀을 통해 진료 기록까지 조작하는 장면이 바로 그 구조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출처: 한국연구재단 학술지 데이터베이스).
제가 조태오 같은 사람을 직접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비슷한 구도를 일상에서 목격한 적은 있습니다. 마트 직원에게 반말로 따지던 손님이 매장 관리자가 나타나자 말투가 180도 바뀌던 모습. 저는 그 순간을 보면서 "저게 진짜 겁쟁이구나" 싶었습니다. 강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누구나 합니다. 문제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얼마나 다른 얼굴을 보이느냐입니다.
갑질이라는 단어는 한국 사회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 표현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부당 대우를 의미합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19년 관련 법 시행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조태오의 행동이 영화 속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사람됨됨이 — 영화 보고 나서 제가 불편해진 이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저는 생각보다 오래 멍하게 있었습니다. "악당 잡아서 시원하다"는 감정 말고,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불편해지는 영화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조태오를 욕하는 게 쉬운데, 막상 "나는 어떤가"를 물어보면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저도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바쁠 때는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40대가 되어 살다 보니 한 가지는 분명해졌습니다. 사람의 진짜 됨됨이는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로 드러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일관성(moral consistency)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해 상황과 상대에 따라 윤리 기준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는 이 생각이 더 절실해졌습니다. 아이에게 "다른 사람 존중해라"라고 말하면서 정작 편의점 직원에게 귀찮다는 듯 대한다면, 아이는 제 말이 아니라 제 행동을 배울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쁜 사람을 잡아야 한다"는 메시지보다 "나는 오늘 누구에게 어떻게 대했는가"를 더 오래 생각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통쾌한 영화일수록 보고 나서 자기 자신이 더 불편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베테랑》이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전망 — 베테랑 2와 이 영화가 남긴 질문
2024년 9월, 1편 개봉 9년 만에 《베테랑 2》가 공개되었습니다. 정해인이 새로운 인물로 합류하고, 1편의 형사팀이 그대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칸영화제 관람 후기에 따르면 호불호가 갈린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액션 연출만큼은 극찬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오락 영화로서의 완성도는 기대해 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2편이 나왔다는 소식보다 1편이 여전히 회자된다는 사실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계를 보면, 1,000만 이상 흥행작 중에서도 개봉 이후 10년 가까이 대중의 기억에 남는 작품은 드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베테랑》이 그 목록에 들어간다는 건, 단순히 재미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잘못한 사람은 결국 책임을 진다"는 명제를 두고,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도 솔직히 그 회의감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 명제를 스크린 안에서만큼은 성립시켜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운 것을 영화가 대신 보여주는 것, 그것이 서사적 카타르시스(Catharsis)의 역할입니다. 카타르시스란 극적 경험을 통해 억눌린 감정이 해소되는 심리적 정화 효과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론에서 처음 정의한 용어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남은 건 서도철의 주먹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어떤 모습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말투가 날카로워지고, 피곤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잊어버리는 제 모습이 조태오와는 전혀 다르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베테랑 1편 다시 보기 전에 줄거리 정리가 필요한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A. 영화의 전체 흐름은 중고차 잠입 수사 → 신진물산 갑질·투신 사건 → 조태오 체포로 이어집니다. 베테랑 2 개봉 전에 1편을 빠르게 복습하고 싶다면 OTT 서비스에서 스트리밍으로 확인하는 게 가장 빠릅니다. 주요 장면과 대사 흐름만 파악해도 2편 맥락을 잡는 데 충분합니다.
Q. 베테랑 2는 1편과 완전히 다른 사건인가요?
A. 서도철 형사팀은 그대로 이어지며, 정해인·보현 배우가 새 인물로 합류하는 구조입니다. 1편과 세계관은 공유하지만 사건은 독립적이라 1편을 보지 않았어도 관람에 큰 지장은 없다는 평이 많습니다. 다만 캐릭터의 관계나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려면 1편 선관람을 권합니다.
Q. 조태오 역 유아인 연기가 실제로 그렇게 잘한 건가요?
A. 제가 보기에 유아인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성공 요소 중 하나입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나쁜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연기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연하다는 듯한 태도'가 관객을 가장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Q. 영화 속 갑질 장면이 과장된 거 아닌가요?
A.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 통계를 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법 시행 이후 매년 늘고 있고, 실제 피해 사례들을 보면 영화보다 더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영화가 과장한 게 아니라 현실이 그만큼 심각하다고 보는 편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결론
《베테랑》은 저에게 두 가지를 남긴 영화입니다. 하나는 서도철 형사처럼 눈치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이고, 또 하나는 "나는 평소에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나"라는 불편한 자기 점검입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무릎 꿇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힘이 있어도 그 힘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베테랑 2가 개봉한 만큼, 1편을 다시 한번 보고 나서 극장으로 향하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