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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소중한 너 (시청각장애, 사회적 인식, 감동 영화)

eun80 2026. 7. 17. 14:56

목차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영화를 틀 때만 해도 그냥 코미디 한 편 보겠다 싶었습니다. 제목도 가볍고, 예고편도 어딘가 웃긴 구석이 있어서 방심한 채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오랫동안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2021년 개봉작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제가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시청각장애, 제가 몰랐던 현실

    일반적으로 장애인 지원은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혀 있다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제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부끄럽게 깨달았습니다. 솔직히 시청각장애(DeafBlindness)라는 개념 자체를 영화를 보기 전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시청각장애란 시각과 청각 두 가지 감각을 동시에 잃은 상태를 의미하며, 단순히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합쳐 놓은 것이 아닙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는 두 가지 주요 감각 채널이 동시에 차단된, 극도로 고립된 상태입니다.

    영화 속 일곱 살 은혜가 특수학교를 찾아갔을 때 교사가 했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현행 법령상 시청각장애는 독립적인 장애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은혜는 시각장애인 교육과 청각장애인 교육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장애 유형 분류란 국가가 법적으로 인정하고 지원 대상으로 삼는 장애의 종류를 말하는데, 이 분류에서 빠진 사람은 그에 맞는 교육도, 복지도 받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2023년 기준 국내 시청각장애인 등록자 수는 전체 등록 장애인 264만여 명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별도 통계조차 명확히 잡히지 않는 실정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영화가 이슈화했던 지점이 바로 이겁니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안 되는 아이가 세상과 소통하려면 촉각(Touch Communication) 하나에 의존해야 합니다. 촉각 소통이란 상대방의 손이나 몸의 접촉을 통해 언어와 감각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인데, 이를 가르치고 지원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국내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영화에서 채식이 장난감 블록으로 한 글자씩 손바닥에 눌러 가르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이 방식이 실제로 시청각장애인에게 사용되는 의사소통 방식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때 부끄럽고 먹먹했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 전부터 언론에 이슈가 됐던 이유도 바로 여기 있습니다. 국내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의 사회적 소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바보라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 존재들을 너무 오래 보이지 않는 곳에 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이유, 영화를 통해 다시 생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감동 영화는 눈물샘을 자극하고 극장을 나오면 일상으로 돌아간다고들 합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달랐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한참 동안 제 거지 같은 일상 불만들이 갑자기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하루하루 버티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일곱 살짜리 아이가 빛도 소리도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고 나니 제 분노가 한없이 작아졌습니다.

    이 영화가 전달한 핵심 메시지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시청각장애인은 보호자가 없으면 사실상 세상과 완전히 단절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취약성을 안고 있습니다.
    • 이 문제는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적 무관심과 제도적 공백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채식이라는 인물이 처음에는 철저히 돈 때문에 은혜와 함께하는 장면들을 보면서, 저는 솔직히 그 인물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어떤 면에서는 시청각장애인 문제 앞에서 그 인물과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던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알면서 외면하거나, 아예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제가 그랬습니다.

    사회적 포용성(Social Inclus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포용성이란 장애, 나이, 성별 등을 이유로 누구도 사회 참여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 구조와 태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갖추고 있지만,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별도 지원 조항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입니다. 2022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73.8%가 일상생활에서 차별이나 불편함을 경험한다고 응답했습니다(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 시청각장애인이라면 그 수치가 더 높을 것은 자명합니다.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재식이 은혜의 손바닥에 '아빠'라고 써주는 순간, 저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장면이 단순한 감동 코드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이 흐르는데도 그 눈물이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게 더 가슴 아팠습니다. 아무리 마음이 찢어져도, 정작 그들에게 손을 내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른다는 게 저를 더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제가 얻은 건 위로가 아니라 각성이었습니다. 몸이라도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큰 복인지, 그리고 그 복을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 있다는 것. 적어도 이 존재들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고,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겐 너무 소중한 너'는 코미디인 척 시작해서 조용히 사람을 바꿔 놓는 영화입니다. 제가 직접 보고 나서 드리는 말씀인데, 기대를 낮추고 보더라도 마지막에는 반드시 무언가 남습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관심과 제도적 지원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영화 한 편이 그 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오늘 밤 꼭 한번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5kPX39gPu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