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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되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영화가 있습니다. 1990년 개봉한 《나 홀로 집에》입니다. 어릴 때는 케빈이 도둑을 골탕 먹이는 장면이 그저 신나고 웃겼는데, 아이를 키우고 나서 다시 보니 처음 30분도 안 돼서 걱정부터 됐습니다. 제가 딱 그 상황을 겪어봤기 때문입니다.
나 홀로 집에 하면 생각나는 추억 — 비디오 대여점까지 뛰어갔던 그 겨울
예전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TV에서 《나 홀로 집에》를 틀지 않으면 허전할 정도였습니다. 12월 내내 반복 편성됐고, 혹시라도 방영을 안 하는 해에는 비디오 대여점으로 직접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남들도 다 같은 생각이라 정작 빌리러 가면 이미 없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는 시카고의 한 대가족이 파리로 크리스마스 여행을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케빈이라는 아이가 이 영화의 주인공입니다. 맥컬리 컬킨이 연기한 케빈은 온 가족의 골칫덩이로 묘사됩니다. 형이 숙제를 태워버리고, 엄마한테 혼나고, 혼자서 다락방에 올라가 잠드는 장면까지, 아이 하나가 얼마나 소외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정입니다.
출발 당일 아침, 전날 밤 정전으로 알람이 꺼지는 바람에 온 가족이 허겁지겁 공항으로 달려갑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도 케빈이 집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탑승 인원을 확인할 때 마침 옆집 아이가 끼어들어 숫자가 맞아떨어졌고, 케빈은 그렇게 나 홀로 집에 남겨집니다.
엄마 마음 — 문밖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날
영화를 보다가 케빈이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제 가슴이 먼저 쿵 내려앉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수십 번은 봤을 장면인데, 아이를 키우고 나서 보니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큰아이가 일곱 살 무렵이었습니다. 아이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 앞 마트에 잠깐 다녀오려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 현관까지 나왔다가, 정말 금방 돌아올 생각으로 아이를 집에 두고 혼자 나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안일했습니다.
돌아왔더니 현관문이 잠겨 있었습니다. 아이가 잠금장치를 건드린 것입니다. 문 안쪽에서 "엄마, 무서워"라고 우는 소리가 들렸고, 저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하필 핸드폰도 집에 두고 나왔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발만 동동 구르다가 옆집 아저씨께 도움을 청했고, 열쇠수리공을 불러서야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아이를 꼭 끌어안고 한참을 "미안해, 무서웠지?" 하고 되풀이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분리불안(separation anxiety)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했습니다. 분리불안이란 애착 대상과 떨어지게 될 때 아이가 느끼는 극심한 불안 반응을 가리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주 양육자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마치 영원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출처: 미국소아과학회(AAP)에서도 만 6세 이하 아동에게는 짧은 분리 상황조차 강한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케빈이 처음에는 신나 보여도 밤이 되자 가족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그냥 연출로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 케빈의 함정과 몸개그의 진짜 매력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케빈이 해리와 마브, 두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는 장면입니다. 조 페시와 다니엘 스턴이 연기한 이 두 도둑은 케빈 네 집이 비어있다는 걸 눈치채고 크리스마스이브를 노립니다. 케빈은 이에 맞서 집 안 곳곳에 함정을 설치합니다.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다니엘 스턴의 몸개그는 수십 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습니다. 타르로 뒤덮인 계단, 고열로 달궈진 문손잡이, 페인트통이 날아와 얼굴을 강타하는 장면까지, 슬랩스틱 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슬랩스틱(slapstick)이란 과장된 신체 동작과 물리적 충돌을 이용한 시각적 웃음 코드로, 말보다 몸으로 웃기는 코미디 기법입니다. 이 영화는 슬랩스틱 장르의 교과서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보니 그 함정들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위험한 지도 눈에 들어옵니다. 영화니까 도둑들이 멀쩡히 잡혀가지만, 실제라면 중증 외상(severe trauma)으로 이어질 장면들이 상당합니다. 중증 외상이란 신체 조직에 즉각적이고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부상 유형을 뜻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이건 판타지에 가까운 영화이고, 그 비현실성이 오히려 통쾌함을 만들어냅니다.
케빈이 도둑들을 모두 물리치고 집을 지키는 데 성공하는 장면의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케빈은 집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고 도둑의 동선을 역이용합니다.
- 공포의 할아버지로 소문난 말리 영감이 결정적 순간에 케빈을 구해줍니다.
- 성당에서 말리 영감과 나눈 대화가 복선이 되어, 영화의 감동적 결말로 이어집니다.
- 맥컬리 컬킨의 능청스러운 표정 연기가 함정 장면의 쾌감을 배가시킵니다.
아이러니 — 혼자 있고 싶었는데, 혼자가 되고 나니
영화의 결말에서 케빈은 혼자 있고 싶다고 바랐던 아이에서 가족을 간절히 기다리는 아이로 바뀌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 함박눈이 내리는데 집 안이 너무 조용하고 케빈의 얼굴이 쓸쓸해 보이는 장면은 어릴 때 봤을 때는 그냥 지나쳤는데, 지금은 한참 바라보게 됩니다. 제가 직접 그 감정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솔직히 혼자 있는 시간이 간절했습니다. 하루 종일 "엄마!" 하고 불리고, 밥 먹이고, 씻기고,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야 했습니다. '언제쯤 내 시간이 생기려나'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집에 제 혼자 남습니다. 처음에는 그 조용함이 좋았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고, 커피 한 잔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고, 뭘 하든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가끔 그 조용함이 너무 조용해서 가슴 한구석이 이상하게 허전해집니다.
"엄마!" 하고 현관에서 달려오던 소리, 집 안이 시끄러울 만큼 떠들던 목소리, 귀찮게 느껴졌던 작은 부탁들이 지금 생각하면 다 그리운 기억입니다. 제 경험상 지금은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도, 지나고 나면 그리운 추억이 됩니다. 케빈이 그 좋아하던 자유를 누리다가 결국 엄마를 기다렸던 것처럼 말입니다.
출처: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애착(attachment)은 아이가 성장한 이후에도 정서적 안정감의 기반이 됩니다. 애착이란 양육자와 아이 사이에 형성되는 지속적인 정서적 유대감을 말합니다. 케빈이 가족을 그리워하는 장면이 수십 년이 지나도 많은 관객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나 홀로 집에 1편 개봉 연도가 언제인가요?
A. 1990년 미국에서 개봉했습니다. 국내 개봉은 1991년으로, 당시 터미네이터 2와 같은 시기에 극장가를 달궜던 작품입니다. 3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케이블 방송에서 특선 영화로 편성될 만큼 사랑받고 있습니다.
Q. 케빈 역할을 맡은 배우가 누구인가요?
A. 맥컬리 컬킨이 연기했습니다. 당시 열 살이었는데, 능청스러운 표정과 귀여운 외모로 전 세계적인 스타가 됐습니다. 제가 직접 다시 봤는데, 지금 봐도 그 나이 또래 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연기 완성도가 높습니다.
Q. 어린아이를 혼자 집에 두면 실제로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요?
A. 나라와 지역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정 연령 이하의 아동을 혼자 방치하는 것은 아동 방임(child neglect)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아동 방임이란 보호자가 아이에게 필요한 감독과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행위를 뜻합니다. 영화는 코미디로 풀었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가볍게 볼 상황이 아닙니다.
Q. 말리 영감은 왜 무서운 사람으로 소문이 났나요?
A. 영화 초반에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가족과 이웃을 해쳤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실제로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 오래 혼자 지낸 쓸쓸한 노인이었고, 케빈과 성당에서 대화를 나누며 오해가 풀립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케빈을 구하는 장면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결론
《나 홀로 집에》는 어릴 때 보면 웃긴 크리스마스 영화이고, 아이를 키우고 나서 보면 가슴이 먼저 조여 오는 영화입니다. 제 경우엔 케빈이 집에 혼자 남겨지는 장면부터 웃기기 전에 걱정이 앞섰고, 엄마가 공항에서 울며 전화를 찾는 장면에서는 그날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제 모습이 겹쳐 보였습니다.
영화가 30년이 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슬랩스틱 코미디의 재미 때문만이 아닙니다. 혼자 있고 싶었던 아이가 결국 가족을 기다리게 되는 그 감정이,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올 크리스마스에 이 영화를 다시 볼 계획이라면, 케빈의 얼굴이 아니라 엄마의 표정을 한번 유심히 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매번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