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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거울부터 들여다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열아홉 살, 버스에서 매일 마주치던 그 아이를 생각하면서 얼굴의 점이 자꾸만 신경 쓰였습니다. 영화 《고백의 역사》를 보다가 불쑥 그 시절이 떠오른 건 단순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바꾸려 했던 그 마음, 그리고 끝내 고백하지 못했던 그 선택이 스크린 위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백의 역사 속 콤플렉스, 그리고 그것을 키우는 시선
영화 속 박세리는 곱슬머리를 콤플렉스로 여깁니다. 제가 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웃음보다 먼저 나온 것은 "나도 그랬는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학창 시절 얼굴에 점이 많았습니다.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데, 당시에는 거울을 볼 때마다 그 점이 제일 먼저 보였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스포트라이트 효과란, 실제로는 아무도 나에게 주목하지 않는데 자신만 과도하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인지 편향을 말합니다. 미국 코넬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외모나 행동을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이 관찰하고 기억한다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Cornell University News).
세리가 머리카락을 펴야만 고백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저도 점이 없어야 자신감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점 빼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으셨을 때는 솔직히 속상했습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먼저였지, 그게 나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으니까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점 때문에 고백을 못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점은 그냥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 스포트라이트 효과: 타인은 내 외모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신경 씁니다
- 콤플렉스는 종종 '진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대리 표현으로 작동합니다
- 10대의 외모 불안은 자기 정체성이 아직 형성 중인 발달 단계의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첫사랑을 고백하지 못했던 진짜 이유
제 학창 시절에는 함께 등하교를 하던 절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버스를 탔고, 그 버스에는 우리 둘 다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타곤 했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을 직접 부르기가 어색해서 우리끼리만 아는 애칭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 쪽 봤던 것 같지 않아?" 하고 친구에게 속삭이면, "그러게, 분명히 봤어"라며 둘이 낄낄댔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엽지만, 당시에는 그 설렘이 너무 진지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끝내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거절당하는 것도 두려웠지만, 솔직히 더 큰 두려움은 따로 있었습니다. 제가 먼저 고백했다가 친구가 같은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어떻게 될까. 그 상상만으로도 발이 묶였습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애착 이론이란 인간이 가까운 타인과의 정서적 유대를 유지하려는 본능적 동기를 설명하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기에는 연인 관계보다 또래 관계에서 오는 안정감이 더 우선시 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그랬습니다. 저는 그 아이보다 친구와의 우정이 더 소중했고, 그것을 잃는 게 더 무서웠던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세리처럼 "안 되겠다, 마음속에 가둬야겠다"라고 결심하고는 결국 그렇게 못 하는 것이 10대의 첫사랑입니다. 저는 달랐습니다. 저는 정말로 마음속에 가뒀습니다. 그리고 그게 옳은 선택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 수용, 40대가 되어서야 조금 알게 된 것
영화가 던지는 질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바꾸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있는 그대로를 사랑받는 것이 맞는가." 이것을 두고 어느 쪽이 무조건 옳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봅니다.
세리가 머리를 펴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자신을 가꾸는 것은 자기 존중의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이 아니면 고백할 자격이 없다"는 전제가 문제입니다. 그 전제가 쌓이면, 어떤 모습이 되어도 고백할 수 없게 됩니다. 조건이 계속 생기거든요.
자기 수용(self-acceptance)은, 쉽게 말해 자신의 단점을 포함한 전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심리적 태도입니다. 자기 수용이 높은 사람일수록 대인관계에서의 만족도와 심리적 안녕감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부모가 된 지금, 이 영화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제 아이가 언젠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저는 "더 예뻐지면 고백해"라고 말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지금 네 모습으로도 충분히 고백할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말을 저는 열아홉 살 때 아무도 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때의 저에게 지금의 제가 한마디를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점 몇 개 때문에 네가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지는 일은 없다고. 고백하지 못한 것은 실패가 아니라 그때 네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 것을 지키려 했던 것이라고.
자주 묻는 질문
Q. 고백하기 전에 외모를 가꾸는 게 잘못된 건가요?
A. 자신을 가꾸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 가꾸는 것은 건강한 자기 돌봄입니다. 다만 "이 모습이 아니면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전제 위에서의 변신이라면, 그 조건은 끝이 없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 경험상 자신감은 외모가 바뀐 뒤에 생기는 게 아니라, 결심할 때 함께 오는 것 같았습니다.
Q. 친구와 같은 사람을 좋아할 때 고백하는 게 맞나요?
A. 어느 쪽이 반드시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고백하고 관계가 정리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더 솔직해져서 우정이 깊어지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저는 고백하지 않았고, 그 친구와의 관계는 지켜졌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답이었는지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택 이후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는 것 같습니다.
Q.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감정은 의미 없는 건가요?
A. 결과만으로 의미를 따지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버스 안에서 친구와 애칭을 부르며 웃었던 기억, 이름 하나에 심장이 빨리 뛰던 그 순간들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설렘 자체가 저에게는 살아 있다는 감각이었습니다. 고백하지 못한 사랑도 충분히 사랑이었습니다.
Q. 자녀가 외모 콤플렉스로 힘들어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까요?
A. "너는 예뻐"라는 말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부모 입장에서 "네가 어떤 모습이든 네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이의 불안을 단번에 없애려 하기보다, 그 감정을 인정해 주면서 함께 있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결론
《고백의 역사》는 고백에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사랑받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담은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스크린 속 세리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시절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점도 못 뺐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그때 제게 부족했던 것은 예쁜 얼굴도 생머리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의 나도 충분하다"는 믿음이 조금 모자랐던 것 같습니다. 그 믿음을 지금의 제가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고, 언젠가 아이에게도 그 말을 먼저 해줄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