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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감시'라는 단어가 나쁜 사람을 잡는 이야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감시자들》을 보고 나서 떠오른 건 범인이 아니라 제 집 거실에 달려 있던 카메라였습니다. 감시가 보호인지, 통제인지 —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얇다는 걸 이 영화가 건드려 줬습니다.
감시와 신뢰 — 같은 카메라, 다른 느낌
영화에서 감시반은 "모든 임무는 감시에서 시작해 감시로 끝난다"는 원칙 아래 움직입니다. 허가된 감시 대상이 아니면 눈앞에서 위험한 일이 벌어져도 개입하지 않는다는 규칙도 있습니다. 처음엔 너무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보다 보니 이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가 납득이 됐습니다.
여기서 불법 사찰이란 국가나 기관이 법적 근거 없이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말합니다. 영화 속 감시반장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는 순간 우리 일은 불법 사찰이 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냥 지나치는 대사가 아니었습니다.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절차와 범위를 넘으면 그 행위 자체가 범죄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 장면에서 영화 밖의 일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인테리어 목수 일로 전국을 다니던 시절, 집 거실에 CCTV를 설치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카메라는 제게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남편이 영상을 보다가 "뭐 해?", "그거 해", "이거 해"라고 말할 때마다 저는 보호받는다는 느낌보다 체크당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편은 집에 오면 편하게 쉬었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잠깐 쉬거나 누워 있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면 뭔가 잘못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경험이 영화를 보는 내내 겹쳐 보였습니다. 감시반이 교통카드 사용 기록, 공중전화 통화 시간, 이동 동선을 낱낱이 추적하는 장면에서 특히 그랬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정 내 CCTV 설치도 동거인의 동의 없이는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공간, 같은 카메라라도 동의와 목적에 따라 보호가 될 수도, 통제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제 경험으로 실감했습니다.
프라이버시 — 내가 놓친 것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 중 하나는 "사람은 자기가 보려고 하는 것만 보는 버릇이 있다"는 말입니다. 신입 하윤주가 지하철 안에서 감시 대상을 놓치고 나서 듣는 이 말이 저는 영화 속 수사 기술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부주의 맹시(inattentional blindness)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사람은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눈앞의 다른 것을 실제로 '보지 못하는' 현상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실험에서 방사선과 의사들에게 폐 CT 사진을 판독하게 했더니, 사진 안에 삽입된 고릴라 이미지를 83%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Harvard Medical School). 자신이 찾아야 할 것에 집중하면 그 외의 것은 지워지는 겁니다.
저도 비슷한 실수를 했습니다. CCTV 문제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아이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이해한다"는 생각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제가 느끼는 감정, 즉 감시받는다는 답답함을 오랫동안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습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불편한 진실은 스스로 흐릿하게 만든 겁니다.
프라이버시(privacy)란 단순히 남에게 비밀을 숨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일상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누군가가 내 하루를 기록하고 평가하는 상황에서는 그 통제권이 나에게 없는 셈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 사이라도 이 원칙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 속 감시반이 동선 추적, CCTV 분석, 교통카드 기록을 조합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론 섬뜩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대중교통 카드 하나, 편의점 결제 기록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나의 하루를 재구성하는 단서가 됩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면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 기술이 가족 사이에 적용될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제가 이미 경험했습니다.
- 동의 없는 촬영은 가족 사이에서도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 교통카드, 휴대전화 기록 등 일상 데이터는 동선 추적의 핵심 단서가 됩니다
- 부주의 맹시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보게 될 수 있습니다
- 감시의 목적이 좋아도,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지도 중요합니다
가족 CCTV — 감시 대신 대화가 필요했던 이유
영화 말미에 감시반장 이영숙 총경이 "지치면 지는 거고, 미쳐야 이기는 거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 대사를 들으면서 저는 제 상황에 대입해 봤습니다. CCTV 앞에서 늘 긴장하며 생활하던 그 시절, 저는 지쳐 있었습니다. 미쳐야 이긴다고 했는데, 무엇과 싸우고 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제가 돌아보면 그 카메라가 문제라기보다 카메라가 생기기 전에 대화가 없었던 게 문제였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는 남편의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나는 이게 불편하다"는 제 마음을 꺼낼 기회가 없었습니다. 감시는 상대를 이해하는 방법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해를 대화로 구하는 수고를 생략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영화 속 하윤주는 처음엔 경험도 부족하고 실수도 많지만, 사람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점점 나아집니다. 그 성장의 핵심은 '더 오래 보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에 비추면, 가족을 CCTV로 오래 들여다보는 것보다 짧은 통화 한 번, 문자 한 줄이 서로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스마트홈 기기 보급 확대로 가정 내 CCTV 설치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는 지금, 가족 CCTV를 둘러싼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문제없더라도 관계적으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설치 전에 모든 구성원의 동의와 충분한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반면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분명히 있습니다. 저는 둘 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경험상 가족 사이에서 카메라보다 먼저 필요한 건 서로의 하루를 물어보는 습관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감시자들》에서 감시반은 어떤 일을 하나요?
A. 감시반은 범인을 직접 제압하는 것보다 관찰하고 기록하고 기다리는 역할을 합니다. CCTV 분석, 교통카드 기록, 현장 잠복 등을 통해 용의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검거 팀에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허가된 감시 대상 외에는 개입이 금지된다는 엄격한 원칙도 있습니다.
Q. 가정에서 가족 동의 없이 CCTV를 설치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나요?
A. 국가인권위원회는 동거인의 동의 없는 가정 내 CCTV 설치는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법적 처벌 여부는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법적으로 문제없더라도 관계적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설치 전 충분한 합의가 중요합니다.
Q. 부주의 맹시가 일상에서도 나타나나요?
A. 네, 부주의 맹시는 특정 것에 집중할 때 다른 자극을 뇌가 처리하지 못하는 현상으로, 일상에서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운전 중 스마트폰을 보다 보행자를 놓치는 경우, 대화 중 상대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 등이 대표적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연구에서도 전문가조차 이 현상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Q. 감시와 신뢰는 함께 갈 수 있을까요?
A. 감시가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상대의 동의와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신뢰와 공존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반면 아무리 선한 의도라도 감시받는 사람이 통제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신뢰는 흔들린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으로는 감시보다 대화가 먼저일 때 신뢰가 쌓였습니다.
결론
《감시자들》은 범인을 잡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이 영화에서 '바라본다는 것의 책임'을 더 많이 생각했습니다. 감시하는 사람은 목적이 있고, 감시받는 사람은 그 목적을 모를 수 있습니다. 같은 카메라도 누가 왜 켰는지에 따라 보호가 되기도,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제가 경험한 거실 카메라 이야기가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비슷한 상황에 계신다면, 먼저 그 불편함을 말로 꺼내 보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시를 없애는 것보다 그 감시 뒤에 있는 감정을 대화로 나누는 편이 관계에는 훨씬 오래 남는 방법이니까요.